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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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늙어가는 사람을 A라는 약어로 부르기로 하자. 우리가 지금 성찰하고자 하는 운명을 공유하는 동료 모두가 이 약어에 포함된다. A. 이것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수학적이고, 최고로 추상적인 기호다. 동시에 독자에게 상상력의 지극히 넓은 자유공간과 더불어 구체화의 능력을 부여해주는 기호이기도 하다.(18쪽)

 

lîla라는 산스크리트어가 있습니다. 거룩한 제의와 질탕한 놀이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 하나에 모순되는 두 의미를 담은 대표적인 역설어휘입니다. 우리말에는 이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역설어휘가 있습니다. [아래아 한]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래아 한]은 30개에 달하는 뜻(크다, 밝다, 맑다, 희다, 바르다, 높다, 같다, 다르다, 많다, 길다, 온전하다, 아우르다, 통일하다, 오래 참다, 강하다, 번성하다, 가운데, 동東, 하나單, 하나唯, 전체, 처음, 한나라, 한겨레, 하늘, 으뜸, 위, 임금, 가장자리, 정해지지 않음)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一:다多, 중中:변邊, 동同:이異라는 세 쌍의 대칭과 그 완성인 혹或 품고 있습니다.

 

일一:다多는 전체·보편·종합·위대함과 개체·특수·해체·사소함의 대칭을 나타냅니다. 중中:변邊은 본질·중용·고요함과 지엽·극단·떨림의 대칭을 나타냅니다. 동同:이異는 일치(포개짐)·맞물림·항상恒常과 차이(쪼개짐)·어긋남·변역變易의 대칭을 나타냅니다. 이 세 쌍은 세계의 비대칭적 대칭의 구성 원리, 또는 구조를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대칭적 대칭구조가 자발적으로 깨지는 과정에서 예측 불가능한, 정해진 궤도가 없는, 무한히 다양한 관계의 네트워크가 생겨납니다. 이 역동적 비결정성, 불확정성이 바로 혹或입니다.

 

A. 이것은 lîla나 [아래아 한] 같은 역설어휘가 없는 상황에서 추상과 구체를 한꺼번에 담아내기 위해 장 아메리가 찾아낸 최상의 기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기호는 어휘와 다릅니다. 임의의 약속은 담아낼 수 있지만 내포한 뜻의 경험이 축적되어 나오는 통찰과 지혜를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거나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모순, 그러니까 이율배반을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문제는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근본 지점에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은 모순, 그러니까 이율배반의 문제를 오랫동안 형식논리학에 맡겨 왔기 때문에 진실에 육박한 답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변증법(적 논리학) 역시 탁월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장 아메리 또한 이 전통 속에 서 있음은 물론입니다. 그의 사유가 가차 없을수록, 그의 삶이 균형·타협·통속화·싸구려 위로를 거절할수록 모순, 그러니까 이율배반의 문제가 속 시원히 풀리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떤 길목에 다다를 때마다 되풀이해서 원효가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니지 싶습니다.

 

A는 균형을 깨뜨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을 해냈을까? 그는 그랬기를 희망한다. 남은 날들은 쪼그라들며 메말라 비틀어지리라. 그럼에도 그는 진리만큼은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211쪽)

 

이 책의 마지막 네 문장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거듭 읽으며 먹먹해진 가슴에 손을 얹고 한참이나 앉아 있었습니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 글 아니었나. 이 도저한 안타까움이 기호A에 이미 내재된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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