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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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벽과 나무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화가처럼 살았다.

그 틈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정경을 그리려

붓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밤이 찾아와

그릴 수 없었으며, 체념한 사이 낮은 다시 밝아왔다!

 

프루스트Proust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서시입니다.

 

시간 속으로 배어든 모순이 공간 이미지로 펼쳐지며 장 아메리의 고뇌는 극적인 비장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려 붓을 들면 이미 어둠이고 체념하면 다시 빛인 이 도저한 어긋남. 발끝 태우는 희망의 덜미를 잡아채 절망의 아득한 심연에 빠뜨리고야 마는 인간 한계. 프루스트의 눈부신 서정 저 너머 아메리는 더욱 시퍼런 칼날을 딛고 서 있습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를 꿰뚫고 흐르는 자각은 모순의 경계에 노루 사슴 뛰노는 비무장지대 따윈 없다는 진실에 대한 것입니다. 단 한 치의 안일도 허락하지 않는 이율배반에 자신의 사유와 삶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장 아메리의 고뇌는 “균형을 깨뜨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211쪽)로 한사코 달려가고야 맙니다. 균형과 타협과 통속화, 그리고 싸구려 위로를 온통 뒤집어쓰고 사는 우리가 장 아메리를 더없이 불편해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 할까요? 서시의 느낌을 보고 바로 책을 덮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밝아왔다 하니 나중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고 발맘발맘 따라 나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도 저도 아니었습니다. 장 아메리는 모순, 그러니까 이율배반을 어찌 한다는 것인가, 그 궁금증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과연 장 아메리한테서 모종의 답을 얻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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