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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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러니까 275번째 2014년 4월 16일 저녁에 이은희가 인사차 한의원에 왔습니다. 이은희는 이번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2관왕(서울신문과 세계일보)이 된 역량 있는 신인작가입니다. 문학의 스승도 아닌데 제가 진심으로 잘 썼다 하니 진심으로 그 인정을 고마워했습니다. 이은희는 자리에 앉자마자 티슈를 통째로 달라 했습니다. 저녁 식사하러 간 음식점에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물론 눈물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이은희는 특히 세월호사건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물 마를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어찌 이은희뿐이겠습니까. 문학적 감수성이 변변치 못한 저조차도 세월호사건 앞에서는 늘 붉은 눈으로 글 쓰고 말하니 말입니다. 아마도 2014년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에는 딱 두 부류가 살고 있지 싶습니다. 세월호사건 떠올리면서 눈을 붉히는 사람과 눈을 부라리는 자.

 

 

붉은 눈의 두 사람은 밤늦도록 “우리가 끊임없이 되돌아가야 할 사상적 좌표축”(서경식)인 이 사건과 우리의 ‘남은’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내용으로든 붉은 눈의 사람들은 이 사상적 좌표축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사상적 좌표축은 붉은 눈의 사람들에게 ‘남은’ 삶이 인문人文 전쟁임을 환기시키고 각자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알리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은희에게는 문학이, 제게는 한의학이 인문人文 전사입니다. 당장은 한 줌의 유격대로, 언젠가는 강대한 혁명군으로, 마침내는 새로운 인문人文 대한민국 정규군으로 그 전사는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수행할 것입니다. 전쟁에 임하는 자세는 다행히도 전쟁을 먼저 일으킨 자들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구태여 사족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파부침주破釜沈舟!

 

 

생각은 날뛰되 글재주가 모자라 끙끙거리던 차에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 홀연히, 아니 필연처럼 나타나 제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경전canonical text 구실을 해주었습니다. 두 달 보름 동안 사제의 자세로 주해annotation 리뷰를 하면서 영혼의 깊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 향기가 이웃에게 번져가서 야젓한 체취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체취 함께 나누는 이가 늘어나고 또 늘어나 남에게 고통을 주고도 희희낙락 살아가는 악마-인간들이 뿜어내는 악취를 몰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이 희망을 실재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프리모 레비의 문제의식과 통찰을 잊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2014년 4월 16일을 본디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그날까지 250위 바리데기 영령들의 가피加被가 함께하시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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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6 1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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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6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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