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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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H. 박사의 편지> ·······물론 당신은 왜 히틀러가 권좌에 올랐나, 왜 그 후 우리는 그 멍에를 벗어버리지 못했나?, 라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기대하시겠지요.·······히틀러가 우리에게 수상쩍어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덜한 악으로 보였습니다. 그의 모든 아름다운 말들이 기만이고 배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처음에 깨닫지 못했습니다.·······우리가 범죄자이자 배신자를 타고 가고 있다고·······그 누가 의심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쨌든 배신당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죄도 돌릴 수 없지요. 오로지 배신한 사람만이 유죄지요.

이제, 더 어려운 문제인 유대인들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의 문제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이러한 증오는 결코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전 세계의 유대인들에 대해 가장 우호적인 나라로서 마땅히 간주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리고 책에서 읽은 한에서는 히틀러 통치 기간 내내, 또 그 종말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에 대한 자발적 모욕이나 공격은 결코 단 한 건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216-217)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본문 반박 글> 히틀러·······엄청난 재앙을 가져온 이 남자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극도로 명확한 생각을 가진, 일관성 있는 광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그 생각들을 바꾸지도 않았고 결코 숨기지도 않았다. 그에게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당연히 그의 생각들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었다.(219)

 

<프리모 레비의 답장 편지> 당신이 단언한 것 중 가장 대담한 것은 독일에서 반유대주의가 인기가 없었다는 대목입니다. 반유대주의는 애초부터 나치 신조의 근간이었습니다.·······히틀러의 그 어떤 글, 어떤 연설 속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되지 않은 적은 없습니다.·······”유대인에 대해 가장 우호적인민족이 어떻게 유대인을 독일의 첫 번째 적으로 정의하고유대의 히드라를 목 졸라 죽이는 일을 정책의 첫 번째 목표로 삼은 당에 투표하고 그 사람을 칭송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발적 공격과 모욕에 대한 당신의 말 자체가 모욕적입니다. 수백만의 죽음 앞에서 자발적인 학대에 대한 문제였는지 아닌지를 논한다는 것이 제게는 한가롭고 혐오스러운 일로 보입니다.(220)

 

T. H. 박사, 당시 독일 지식인의 대표단수일 법한 이 사람의 편지는 부역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배신에 모든 죄악을 뒤집어씌우는 비겁한 억지. 수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들에게 가장 우호적이었으며 자발적 모욕이나 공격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의도적 무지. 이에 대한 프리모 레비의 통렬한 반박은 사실 불필요한 친절이었습니다. T. H. 박사가 정말 몰랐었다면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고 이런 식의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알면서도 이런 편지를 쓴 것이므로 답장을 받고 생각이 바뀌었을 리 없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진실은 프리모 레비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히틀러라는 이름 대신 대한민국 매판 과두나 마름 이름 써 넣고 유대인 대신 단원고등학교 아이 이름 써 넣으면 이 편지들은 그대로 우리사회 부역지식인 아무개와 유민 아빠 김영오씨 간의 편지가 됩니다. 처음부터 배신자 따위는 없었습니다. 매판 세력의 다양하고 현란한 야합이 있었습니다. 우연한, 그러니까 비자발적인 교통사고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자발적인 대량학살사건이었습니다. 죽이고도 그 뒤에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모욕하고 공격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발적으로 모욕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배신당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죄도 돌릴 수 없다고 억지를 쓰며 자발적 모욕이나 공격은 결코 단 한 건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무지를 우깁니다. 프리모 레비의 진실이 다시 한 번 프리모 레비 자신에게 되돌아왔듯 김영오씨의 진실이 다시 한 번 김영오씨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라도 끝까지 거짓을 통박하는 외침소리를 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라도 기어이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역지식인한테만 귀가 달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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