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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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급으로부터 내 책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변해달라는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반장인 듯한 똘망똘망해 보이는 한 소년이 내게 예의 그 익숙한 질문을 했다. “왜 도망치지 않으셨어요?” 나는·······설명했다. 별로 납득이 되지 않은 소년은 내게 감시탑과 출입문들, 철조망과 발전소의 위치를 넣어서 수용소의 약도를 칠판에 그려달라고 했다.·······나는 최선을 다해 그려보였다. 소년은 몇 초간 약도를 찬찬히 살펴보고는 좀 더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요구하더니 나에게 자신이 생각해낸 계획을 말했다. 여기서 밤중에 보초의 목을 친 다음, 그의 옷을 입고, 곧바로 발전소로 달려가서 전기를 차단한다. 그러면 탐조등이 꺼질 것이고 고압전류의 철조망에도 전기가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걱정 없이 나가면 된다, 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진지하게 덧붙였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세요. 꼭 성공하실 거예요.”

 

  ·······‘그곳’에서의 실제 상황(에 대하여-인용자 변경) 책이나 영화, 신화들이 키워낸·······상상력은 치명적 단순화와 고정관념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이는·······타인의 경험을 인지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진 어려움이나 무능력의 일부를 보여준다. 타인의 경험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또 질적으로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이러한 어려움이나 무능력은 더 심해진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주변’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아우슈비츠에서의 굶주림이 한 끼를 건너뛴 사람의 배고픔인 것처럼·······.(191-192쪽)

 

서구의학은 정신을 뇌로 환원하기 때문에 뇌를 조절하는 약물 중심으로 마음병을 치료합니다. 저는 정신이 뇌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 그러니까 대화/상담 중심으로 마음병을 치유합니다. 정신은 말을 매개로 접히고 펴집니다. 말은 본질적으로 은유(와 환유)입니다. 은유인 말을 매개로 접히고 펴지는 정신 역시 은유의 세계입니다. 은유의 세계인 정신에서 은유의 수사修辭만큼 좋은 소통/치유 방편은 없습니다. 은유의 수사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다른 사람의 삶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 (이야기)를 들려주면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은유의 본디 목적에 맞게, 다른 에피소드 속에서 같은 메시지를 찾아냅니다. 치유가 잘 일어납니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같은 메시지에는 귀를 막고 다른 에피소드에서 자신보다 덜 힘들다는 근거를 찾아냅니다. 치유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차이는 마음병의 형태와 연결되지만 좀 더 깊이 따지고 들어가 보면 병 이전에 인간 자체의 한계성에 닿아 있는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필경 후자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는·······타인의 경험을 인지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진 어려움이나 무능력의 일부를 보여준다. 타인의 경험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또 질적으로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이러한 어려움이나 무능력은 더 심해진다.

 

프리모 레비가 정확히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이나 무능력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불가피하게 자기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경험은 본질상 같아도, 심지어 더 본질적이어도 자기 감각 너머의 무엇입니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남 가슴 속 대못보다 더 아프다.’는 우리 속담이 바로 이런 맥락입니다. 프리모 레비가 다시 명쾌한 고찰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주변’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중심은 ‘커’ 보이고 주변은 ‘작아’ 보이기 마련입니다. 내 문제는 ‘어려워’ 보이고 남의 문제는 ‘쉬워’ 보이기 마련입니다. 내 판단은 ‘뛰어나’ 보이고 남의 판단은 ‘모자라’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치우친 생각, 그러니까 고정관념은 언제나 진지하고 의젓하게 충고합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세요. 꼭 성공하실 거예요.

 

프리모 레비에게 아우슈비츠 탈출비법을 가르쳐준 그는 무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였습니다! 마치 이 어린이처럼 인간은 타인의 경험을 주변화합니다. 진심을 다했다고 해서 안이함과 어설픔을 넘어 순진한 고의로 가한 공격이 백지화될 수는 없습니다.

 

세월호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우리사회는 끊임없이 이런 짓을 자행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자는 자신이 부보들보다 더 가슴 아프다는 할리우드 “상상력”을 공식석상에서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엊그제 나온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합의안’은 전지적 시점을 취함으로써 다시 한 번 아이들의 죽음을 모독하고 부모들의 고통을 희화하였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죽어간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지켜야 할 도리는 우리의 인지 무능력을 철저히 자각하는 데 바탕을 두고서만 성립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실은 묻어둔 채 보상과 지원, 그리고 추모로 떠들썩하다가 잊고 말 것입니다. 그 잊음으로 우리는 영원히 인간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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