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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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나는, 어리석으면서도 동시에 상징적인 폭력의 극단적 예로서 인간의 신체를 마치 물건처럼, 곧 아무 것도 아닌 것인 양 자의적으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다룬 무자비한 사용에 대해 좀 더 언급하고자 한다.·······

  ·······라거나 가스실로 보내진 여성들의 잘린 머리카락·······은 독일의 몇몇 섬유기업이 구입해서 침대 카버나 다른 산업용 직물로 제조하는데 사용 되었다.·······이윤을 얻으려는 동기보다 잔학한 폭력의 동기가 우위에 있었·······다.

  하루에 수톤 씩 화장터에서 나온 인간의 재는 대개 치아나 척추 뼈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습지대를 메우기 위해, 목조 건물의 벽 사이에 넣을 단열재로, 심지어 인산비료로 말이다. 특히 수용소 옆에 위치한 SS군의 마을길을 포장하는데 자갈 대신 사용되었다(150-151쪽)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으로 나는 세상에 왔습니다. 존엄한 삶을 살던 어느 날 영문 모른 채 잡혀 기차에 태워졌습니다. 느닷없이 날아드는 주먹에 맞으며 형언할 길 없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쭈그려 앉아 용변을 보았습니다. 벌거벗겨진 몸에 문신이 새겨졌습니다. 개처럼 혀로 죽을 핥아먹었습니다.

  마침내 가스실에서 숨이 멎었습니다. 차가운 육신을 빠져나와 떠돌다가 문득 살인자들이 머리카락을 채취해 침대 카버 만드는 것을 봅니다. 육신을 태우고 남은 재를 살인자들이 노상 밟고 다니는 길바닥에 자갈 대신 뿌리는 것을 봅니다.

  죽어서도 그 밑에 깔리고 밟히는 광경을 보며 통곡합니다. 울고 또 울다 이윽고 칼을 듭니다. 심장을 향해 힘껏 찌릅니다. 칼은 바람소리를 낼 따름입니다. 돌연 칼끝을 돌립니다. 그 형상을 따라 나를 창조했다는 신을 향합니다. 거기도 바람소리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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