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거대종교는 예외 없이 광활한 대지, 높은 산, 큰 강, 황량한 사막에서 태어났다. 이런 조건이 종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휴먼스케일을 벗어난 내러티브를 골간으로 삼는다. 영원. 극락. 천국. 해탈. 구원. 너무 멀고, 너무 높고, 너무 깊고, 너무 넓다. 아득하다 못해 가뭇없이 사라진다. 종교가 일상의 삶 문제, 그러니까 정치경제 문제에 무력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종교 아니냐고 할 것인가. 여기서 무력함이란 해결을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과 자본의 주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종교라면 그게 왜 필요한가.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지금이 영원이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여기가 극락이며 천국이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자본의 수탈에서 놓여나게 하는 것이 해탈이어야 한다. 진정한 종교에서라면 권력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구원이어야 한다. 멀어도 이를 수 있어야 한다. 높아도 오를 수 있어야 한다. 깊어도 닿을 수 있어야 한다. 넓어도 번져갈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가 정녕 인간의 것이려면 시내 하나 품어 인간다운 삶을 키워내는 낮은 산 아래 마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인간 앞에서 감히 주절거리지 말라. 얼쩡대지도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