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로생활 첫 며칠 동안 숟가락이 없다는 사실은 이(강요된 나체 상태-인용자)와 똑같은 무력감과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하찮게 보일 수도 있는 작은 세부사항이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문제였다. 숟가락 없이는 매일 죽을 개처럼 핥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다.·······아우슈비츠가 해방되었을 때 우리는 창고에서, 막 도착한 강제이송자들의 짐 꾸러미에서 나온 알루미늄, 강철, 심지어 은으로 된 숟가락 수만 개 외에도, 완전히 새것인 투명 플라스틱 숟가락 수천 개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근검절약의 문제가 아니라 굴욕감을 주려는 정확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137-138쪽)

 

「김선우의 사물들」첫 장 <숟가락, 날마다 어머니를 낳는>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먹는다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살아 있기를 희망하는 존재들에게 필연적으로 부과되는 일.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존재의 치명적인 약한 고리이며 그리하여 먹는 일과 먹이는 일은 도덕적, 미학적 가치 부여 이전에 그 행위 스스로의 위엄으로 순결해진다.(「김선우의 사물들」17쪽)

 

스스로의 위엄으로 순결해지는 먹는 일과 먹이는 일에서 숟가락은 매우 결정적인, 그리고 고유한 중요성을 지닙니다. 다시 김선우를 인용합니다.

 

숟가락은 뜬다.·······뜬다는 것은 모신다는 것이다.·······무엇인가 숟가락으로 떠서 입속에 넣을 때 우리는 반드시 고개를 숙이게 된다.·······숟가락은 공경을 내포한다.(「김선우의 사물들」13쪽)

 

스스로의 위엄으로 순결해지는 먹는 일에 숟가락은 모심, 그러니까 공경을 더합니다. 먹는 일의 거룩함을 훼손함으로써 인간성을 훼손하려는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나치는 포로들에게 숟가락을 주지 않았습니다. “개처럼 핥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포로들에게 개처럼 먹도록 강요함으로써 저들의 “먹이는 일” 또한 함께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아차렸을 리 없습니다. 포로를 비인간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들도 비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저들이 깨달았을 리 없습니다. 폭력의 살상이 피해자에게만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해자의 착각일 따름입니다. 스스로를 악귀로 만들면서 키들거리고 있습니다.

 

숟가락을 빼앗는 것은 이렇게 함께 죽이는 일입니다. 숟가락을 주는 일은 그러므로 함께 살리는 일입니다. 김선우를 마지막으로 다시 인용합니다.

 

숟가락은 둥글다.·······손가락들을 가지런히 모두 붙이고 손바닥, 손목까지 전체를 사용하는 통합구조물이다.(.(「김선우의 사물들」12-13쪽)

 

오늘은 진료를 조금 일찍 마치고 평택으로 갑니다. 일전 굴뚝 위로 올라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의 아내 자영에게 ‘숟가락’ 하나 건네려 합니다. 비록 반짝이는 좋은 것은 아닐지라도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