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체제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비인간적인 체제는 자신의 비인간성을 사방으로, 특히 낮은 곳을 향해 퍼뜨리고 확장한다. 저항이 없으면, 그리고 이례적으로 강인한 성격이 아니라면, 그 체제는 자신의 희생자와 반대자를 부패시킨다.(135쪽)

 

프리모 레비의 예리하고 명징한 통찰은 도처에서 진실을 아프게 선명하게 드러내거니와 여기 이 한 마디처럼 가차 없는, 그러니까 다른 생각의 틈을 전혀 내주지 않는, 다시 그러니까 단칼에 베어버리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체제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논리적 귀결, 이것은 필연적 결과corollary입니다. 체제,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프레임frame입니다. 여기 갇히면 영락없다는 뜻입니다. 체제가 지니는 구속력을 이보다 더 도저하게 표현할 문장은 다시없습니다.

 

나치체제가 히틀러를 위요한 최상층부에서 시작하여 아우슈비츠에 이르기까지 그 비인간적 논리로 완전 감염된 기간은 불과 십여 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경우, 신라 통치 집단이 ‘삼한일통三韓一統’이란 프레임을 만든 이래 천오백 년 동안 여기 갇혀, 그 논리적 귀결에 따라 흘러왔습니다. 당唐을 등에 업고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려 벌인 매판전쟁의 음모에 붙인 암호명 삼한일통이 끝내 이 나라 역사의 상징적 프레임으로 굳어져버린 것입니다. 신라 통치 집단은 영묘한 환생 기술을 발휘하여 고려와 조선까지 팔아먹으며 여기까지 왔고 또 다시 대한민국을 팔아먹고 있는 중입니다.

 

중앙의 권력이 주도하는 국가적 차원의 매판체제는 장구한 세월 동안 “사방으로, 특히 낮은 곳을 향해” 자기복제와 확산을 계속해왔습니다. 그 필연적인 결과는 이제 동네 경로당에까지 빈틈없이 단단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치와 법의 이름으로 “우리가 남이가?” 구호 아래 패거리가 뭉치고 또 뭉칩니다. 그 패거리의 본질은 매판의 떡고물을 나누어 가지는 부패 카르텔입니다. “저항이 없으면, 그리고 이례적으로 강인한 성격이 아니라면” 이 부패에 필연적으로 연루됩니다.

 

이 얼마나 버거운 짐인가 말입니다. 저항이라니. 이는 듣기만 하여도 오금 저리는 말입니다. 이례적으로 강인한 성격이라니. 이는 듣기만 하여도 주눅 드는 말입니다. 평범하고 수더분하게 살면서 비인간적 체제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꿈꾸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세상에서 대체 뭘 어찌 해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 자기검열을 하지 않으면 몸 짓 한 사위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 대체 뭘 어찌 해야 하는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체제 앞에서 느끼는 소시민의 무력감, 나아가 무력함 또한 다른 형태의 부패입니다. 자발적·능동적인 주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인간의 존엄을 잃고 병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면 기본적인 저항은 필수입니다. 저항하려면 공포와 불안을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공포와 불안을 견디려면 홀로 고립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립된 개인은 무력하지만 손잡은 개인들은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 기다릴 일 없는 이 세상에서 내 손 잡아줄 사람 말고 달리 누구를 찾을 것입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