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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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휴전」(돌베개에서 낸 번역본 19~20쪽 -필자)의 한 부분을 다시 읽는다.·······시신과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우리 수용소 앞에 처음 나타난 러시아 적군들(아우슈비츠는 1945년 1월 이들에 의해 해방되었습니다. -필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인사를 하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음울한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입을  봉해 버리는, 감히 무어라 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동정심과 더불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 았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그 수치심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 선발이 끝난 뒤, 그 리고 매번 모욕을 당하거나 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했을 때마다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던 그 수치심, 독일인들은 모르던 수치심,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의로운 자가 느끼는 수치심이었다.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만물이 존재하는 세상 속으로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이 들어와 버렸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무 것도 아니었거나 턱없이 부족했고 또 그것을 막는데 아무 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이 의로운 그를 가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84쪽)

 

흔히들 의자醫者를 좋은 직업으로 생각합니다. 돈 잘 번다는 통속한 인식 탓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치료한다는 가치 판단도 한몫했을 테지만 이 부분에는 제법 많은 이야깃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임상 현실에서는 치료 효과에 대한 불평을 수없이 듣게 됩니다. 치료 효과가 탁월하다고 해서 감사를 표해오는 사람이 말 한 마디 없이 발길을 끊는 사람보다 많은 것도 결코 아닙니다. 저처럼 마음병 치료하는 경우는 더 어렵습니다. 몸 병처럼 눈에 띄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좋지 않은 감정 상태로 그만두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때마다 의자인 저도 심경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 상담치료를 진행하는 중이거나 그만둔 직후 내담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둔 경우에는 실로 형언하기 힘든 감정 상태에 빠져듭니다. 그 감정의 핵심에 놓인 것이 아마도 죄책감과 수치심일 것입니다. 작년 여름 이런 일을 겪으며 쓴 글 하나가 있습니다.

 

*

 

곱고 귀한 사람을 하나 잃었습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 선한 눈매로 환히 웃으며 당장이라도 제 방문을 열고 들어설 듯합니다. 차마 눈조차 뜨지 못한 채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만을 되뇌던 그 아내가 여적 제 앞아 앉아 오열하는 듯합니다.

 

삼년 전 쯤 그는 깊은 우울증으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서울과 충청도를 오가며 몇 차례 상담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상담을 통해 인생의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는 걸 경험했다 하였습니다. 그 뒤 가까운 한의원에서 약도 지어먹고 하면서 기운을 되찾아 건강한 삶으로 복귀하였습니다.

 

그가 그러는 사이 저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아 고전 중에 있었습니다. 한의원이 결딴나 낭인으로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천신만고 끝에 용마산 발치에 조그만 동네 한의원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맨주먹으로 빚 얻어 시작한 터라 초기 함몰비용을 견디지 못해 매순간이 가시방석이었던 나날의 끄트머리에 홀연히 그가 나타났습니다. 농사꾼인 그에게는 물론 제게도 함부로 못할 거금을 하얀 봉투에 넣어서 말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제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기적이 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보잘 것 없는 것이 다른 기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벼랑 끝에서 저를 구한 그는 표표히 자신의 삶터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건강함에 작은 힘이나마 보탠 인연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머물던 제 눈길에 한 동안 휴식을 주어도 되겠다며 안심했습니다. 그러던 지난 봄 어느 날 급한 문자 한통이 날아들었습니다. “남편 상태가 심각해요. 선생님께서 전화 한 통 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 움직일 거예요.”

 

저는 지체 없이 전화를 했고 그 길로 올라오라 해서 만났습니다. 차를 마시다가 식사로 이어지고 마침내 낮술로 속을 어루만지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오직 착하고 곧고 맑은 마음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진보정치 일선을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진보진영의 파쟁을 온 몸으로 겪게 되었습니다. 그가 받은 상처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상처를, 그 억울함을 어디에도 다 털어놓고 말하지 못한 채, 말한 그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속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울며불며, 가슴을 치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둠이 푸르게 내려앉을 때까지. 저는 깊이 경청했고 그의 주장을, 그의 깊은 마음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그가 이 고통의 강을 또 한 번 잘 건너갈 거라 믿었습니다. 전처럼 신뢰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醫者의 믿음은 한낱 안일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아픈 사람에게서 삶의 냄새만 맡고 죽음의 냄새는 짐짓 외면하는 통속한 감수성, 아니 관성이 그 날의 만남을 마지막 만남이 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저 통속한 신뢰의 알량한 봉인을 뜯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다 마침내 다시 한 번 급박한 문자 한통으로 제 영혼은 된서리를 맞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둔해빠진 醫者는 또 허접한 후회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 밤을 함께 새줄 걸, 내려간 뒤 수시로 챙길 걸, 그가 왔듯 내가 갈 걸....... 허접한 후회가 어찌 그리 쓰린지요. 뼈의 마디마디가, 살의 갈피갈피가 쑤시고 또 쑤셨습니다. 그의 선한 얼굴이, 그의 웃음이, 그의 눈물이, 그의 언어가 떠오를 때마다 칼에 베이는 듯 아팠습니다. 그 아내의 오열이 떠오를 때마다 온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여 찰나마다 숨이 멎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한 깨달음 앞에 무릎 꿇습니다.

 

통속한 이 醫者의 죄책감이 이러할진대 연애 오년 동안 사랑의 편지 이천 통을 주고받았던, 부부로 살면서 그 고통의 고비마다 동참했던,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멀쩡했으나 더 이상 온기를 내지 않는 그 뺨을 부비며 울부짖었던, 그 아내의 심경은 오죽할까....... 오히려 내 죄책감 따위는 시건방 떠는 짓 아니겠는가....... 그래, 이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앞의 아픈 사람 하나하나 제대로 살피는 게 醫者의 애도다. 매일매일 하늘의 애인에게 연애편지를 쓰며 온 영혼으로 견디고 있는 그 아내에게 한약 한 제 정성껏 달여 보내는 게 醫者의 애도다.

 

삼가 있는 그대로 그의 삶에 도저한 공감과 지지를 보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제가 지니고 있는 마음을 이제는 더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자칫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막걸리에 감자전 놓고 말할 수 없는 말로 그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요. 그 때 와서 다시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_

 

*

 

제가 겪은 일이 이 정도의 죄책감과 수치심을 불러올진대 하물며 아우슈비츠 안에서 옆 자리 있던 사람을 가스실로 떠나보낸 사람은 어떠했겠습니까. 해방시킨다며 아우슈비츠에 들어와 처참한 모습을 목도한 러시아 적군 병사는 또 어떠했겠습니까. 아니, 바로 우리 곁의 저 어미와 아비들, 생떼 같은 새끼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대체 어떠했겠습니까.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의로운 자가 느끼는 수치심이었다.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만물이 존재하는 세상 속으로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이 들어와 버렸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무 것도 아니었거나 턱없이 부족했고 또 그것을 막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이 의로운 그를 가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이 도저한 고찰은 우리 심장에 서늘한 숙명을 얹어줍니다.

 

“하늘은 2014년 4월 16일 그대를 의인으로 세웠다. 의로움을 증명하라.”

 

의인답게 살고자 할 때, 죄책감은 다만 감정이 아닙니다, 수치심은 다만 심경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의로운 삶을 이끌고 가는 견인차입니다. 그 견인차 뒤를 혼신의 힘으로 따르면 비로소 천명의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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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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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4 17: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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