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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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시무시한 부패 권력을 행사하는 지옥 같은 체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체제는 자신의 희생자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든다. 크고 작은 공범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매우 단단한 도덕적 뼈대가 필요하다.·······만약 불가피하게 몰릴 때, 동시에 유혹이 우리 마음을 부추길 때 우리들 각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 역시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는 것을, 게토 주위엔 담벼락이 둘려 있고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78-80)

 

위 두 문단은 두 쌍의 대립하는 언어로 마주 세워져 있습니다. 저항: 타협. 단단한 도덕적 뼈대: 본질적인 나약함. 대립은 이미 한쪽으로 기운 것입니다. 프리모 레비가 처했던 현실이 그랬습니다. 우리 또한 그렇습니다.

 

큰 권력에 맞서는 작은 개인의 절망감을 확인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디부터 전제된 바였습니다. 여기서는 망각의 습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림, 그러니까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권력과 타협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무심코 자신이 강하다고 착각하거나 강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터하여 자기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리는 사람입니다. 여기 주체적인 삶이라는 것이 바로 단단한 도덕적 뼈대로 구성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착각하는 자가 세상을 바꾼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할 뿐입니다. 강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자가 세상을 바꾼 적 또한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곳으로 타인을 몰아대다 한 생을 허비할 뿐입니다.

 

스스로 약함을 뼈저리게 인정하고 그 진실 위에 실재의 벽돌을 한 장씩 쌓아올리는 사람이 무시무시한 부패 권력을 행사하는 지옥 같은 체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렵더라도 어줍지 않은 변명 주절대며 타협하지 않는 뚝심과 더딤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이 이상을 누가 감히 입에 올릴 수 있을까요. 그러려면 필히 두 사람 이상이 손을 마주잡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프리모 레비의 다시없는 통찰에 경의를 표하며 몇 마디 사족을 더합니다. 그가 저항의 근거로 제시한 도덕의 뼈대는 인간의 본질적인 나약함 가운데 탐욕 문제에 유념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구태여 도식적 설명을 한다면 감정 이성 의지 가운데 의지에 방점을 찍은 것입니다. 이성에 주의하면 무지 문제에 대하여는 지혜를, 감정에 주의하면 공포 문제에 대하여는 고요 또는 용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가운데서도 이 <회색지대> 부분은 프리모 레비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고백한 대로 이 곡진한 증언마저 바닥까지 가보지 못한 자, 그러니까 특권을 향유한 포로의, 다시 그러니까 승자의 기록이랄 수 있기에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야말로 프리모 레비의 유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유언은 나지막합니다.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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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2 0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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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2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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