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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평점 :
호송열차를 타고 방금 도착한 사람들이 가스실에 빽빽이 들어찬 뒤 죽임을 당했다. 특수부대는 매일같이 하는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다. 얽히고설킨 시체들의 몸을 풀어 호스의 물로 씻기고는 화장터로 시체들을 운반한다. 그러나 맨 밑바닥에서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 소녀를 발견한다.·······
의사가 불려오고 주사를 놓아 소녀를 소생시킨다.·······그 순간, 죽음의 시설을 담당하는 SS대원들 중 한 명인 무스펠트가 다가온다. 의사가 그를 한쪽으로 불러 사건을 설명한다. 무스펠트는 망설이다 결정한다. ‘안 된다. 소녀는 죽어야 한다. 나이가 좀 들었다면 일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는 좀 더 분별력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침묵하도록 그녀를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겨우 열여섯 살이다.’ 결국 그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제 손으로 죽이지 않고 자신의 부하를 불러 소녀의 목덜미를 쳐서 죽인다.(63-65쪽)
프리모 레비를 읽는 그 어떤 순간도 먹먹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두 번 죽임당하는 이 소녀 이야기는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이게 합니다. 책을 덮고 망연히 앉았다가 다시 열어 같은 곳을 들여다보기를 반복하며 떠나지 못합니다. 찰나마다 눈물도 되돌아옵니다. 아, 이렇게 아픈 적이 또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나치 치하의 아우슈비츠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국민을 주권자로 명시한 헌법을 지닌 대한민국의, 국가보호장비로 지정된 6825톤짜리 배입니다. SS 대원이 아닙니다. 국민을 지키라고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해군과 해경의 통수자입니다. 열여섯 살 소녀 한 명이 아닙니다. 같은 또래 소녀와 소년 250명입니다.
나치는 살해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제노사이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제노사이드 자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교통사고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이 국가는 저 어린 국민 250명을 왜 살해하였는가?
‘안 된다. 소녀와 소년들은 죽어야 한다. 나이가 좀 들었다면 일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들은 좀 더 분별력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침묵하도록 그들을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겨우 열여섯 살이다.’
이것이 살해이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