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권력은 마모되지 않고 부패한다.·······(왜냐하면) 그들의 폭력에 지워진 하한선은 낮았지만 상한선은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치명적으로 중독된다·······.(51-53쪽 * 괄호 안은 필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세월호 유족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 일어난 뒤 어떤 자가 유족을 권력집단이라 매도하면서 인용한 존 액튼 경의 경구입니다. 참으로 어이 상실한 패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자야말로 절대 부패한 권력이 흘려준 떡고물, 그 알량한 특권을 받아먹으며 상한선 없는 폭력을 유족에게 가한 중독자입니다.

 

그 자만 유독 어처구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사회는 저런 망발이 주류 언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SNS를 헤집고 다니며 맞춤법 기본조차 모르는 채 말 아닌 말을 배설물처럼 뿌리고 다니는 강모 같은 자에서 뜨르르한 당대 논객 조모 같은 자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어떻게 “마모되지 않고 부패”하는가, 증언해주는 특권층 포로는 차고도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아우슈비츠처럼 절대인 권력은 부패 그 자체로써 마모, 그러니까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폭력에 상한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 카포들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일반 포로들을 때려죽였습니다. 이 땅의 카포들도 304명을 배에 가두고 바다로 밀어 넣어 죽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유족들을 시체장수로 빨갱이로 몰아 사회적 살인을 자행하였습니다. 지금도 배상을 보상으로 둔갑시키면서 죽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과두정치寡頭政治의 단맛에 취해 스스로 전유한 진보와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내다버린 제일야당까지 합세한 지금 가히 이 권력은 천하무적입니다. 문득 「눈먼 자들의 국가」의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박민규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지만 보수는 부패로 망하지 않는다. 분열엔 의리가 없지만 부패엔 의리가 있기 때문이다.”

 

부패로도 망하지 않게 하는 이 의리란 무엇일까요? 여기 의리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폭끼리 지키는 결속을 말합니다. 차라리 ‘남남끼리 혈족 관계를 맺는 일’로 은유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디 혈족이 아닌데 혈족처럼 하나 된다는 것이니 보상 협잡의 쌍방당사자인 ‘새’ 자 돌림 정당들에게 꼭 맞는 뜻풀이이지 싶습니다.

 

이런 의미의 의리가 당당하게 유통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프리모 레비가 통찰한 바, 바로 “자신들이 가진 권력에 치명적으로 중독”되는 것입니다. 중독이란 어떤 사고나 사물에 젖어 버려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병리 상태입니다. 중독자는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며 오직 자신이 젖어든 그 상태의 지속에만 집착합니다. 권력이 허락해준 상한선 없는 폭력. 그 폭력이 가져다주는 이득. 그 이득을 길이 누리기 위해 손잡는 의리. 그 의리로 뭉친 패거리가 내세운 이름이 바로 ‘눈먼 자들의 국가 대한민국’입니다. 절대 부패로 망하지 않을 이 절대 권력 앞에서 우리가 당장 할 일은 무엇일까요. 다시 박민규를 떠올립니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