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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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이 책을 남긴 까닭은 단지 타인에게 사실을 알리고 남을 설득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증언을 사람들을 향해 외쳐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그는 과학자 같은 솜씨로 깊은 절망의 양상을 해부하여 자기 개인의 생물학적 생명을 넘어서는 가치(이 경우 ‘진실’이라 부르는 수밖에 없다.)를 위해 이 책을 남긴 것이다.(279쪽)

 

“아빠는 왜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요?”

 

세상을 읽는 방식이나 사회적 실천에서도, 생업인 한의사 노릇에서도 ‘주류’적이지 않은 모습을 나름 주의 깊게 지켜봐왔을 뿐만 아니라 중학생 시절 아비 손을 잡고 촛불집회에 여러 차례 나갔던 스무 살짜리 딸이 묻습니다. 제게 이 질문은 두 방향에서 들려옵니다. 육십 나이에 이른 아비가 더는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들리는 한편, 아이 아닌 어른으로서 아비의 삶이 지닌 곡절을 극진한 마음으로 들어보겠다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아비의 인생관과 사회관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왔는지 간결하게 설명해준 다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조선이 국권을 상실할 때 매판행위를 한 자들과 일제에 부역하여 독립군을 포함한 동족에 총부리를 겨누던 자들의 후손이 권력을 쥐고 그 조상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오늘, 항일의병장의 후손인 아빠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니?”

 

개인의 인생이 가업은 아닙니다. 조상의 삶이 곧 후손의 의무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매판세력은 백여 년 전 조선의 멸망에서 오늘의 세월호사건에 이르기까지 온갖 불의를 정의로 전복시켜가며 국가의 이름으로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이치만을 따지고 있는 것이 과연 인간다움을 굳건히 지키는 일일까요? 인간으로서, 조국·독립·민족·정의·자유·평등·윤리·공존 등의 개념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무엇은 계승하고 무엇과는 단절할 것인가, 판단하고 그에 따라 평생을 건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이 다만 “생물학적 생명”일 뿐이라 단언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도둑질을 하건 사기를 치건, 나 하나, 그 연장선에 있는 일차집단만 잘 살면 그뿐인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이 당연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인간의 인간인 소이의 전부라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불리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짐승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그러니까 악귀나 다름없는 짐승일 뿐입니다. 진화가 어느 순간부터 윤리의 역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이 사태를 응시하며 프리모 레비는 한 글자 한 글자 뼈에 새겨 넣듯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써내려갔을 것입니다. 그 프리모 레비 영혼이 팽목항 부두에 앉아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왜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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