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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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모 레비에 따르면 수인들에게 해방이 무조건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를 되찾음과 동시에 치욕감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어둠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다.” 강제수용소의 수인들이 해방 후에(종종 해방 직후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프리모 레비의 술회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들이 경험한 심연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한 그 자신이 이 책을 남기고 자살해버렸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의 놀라움은 결정적인 것이 된다.(276쪽)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저는 인문의학적인 상담으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돌연변이’ 한의사입니다. 임상 경험을 통해 제가 이름 붙인 병이 더러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서울대증후군”입니다. 서울대 학부 또는 대학원에 입학한 (직)후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일이나 사람에 대한 두려움, 힘없음, 의욕 없음, 관심사 없음, 즐거움 못 느낌, 지쳤다는 느낌, 쉽게 피곤해짐·······우울장애 범주에 넣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학생들이 의외로 드물지 않습니다. 사실은 좀 더 일찍, 그러니까 외고나 과고에 입학한 직후부터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뜸 이런 의문이 드실 것입니다.

 

“아니, 서울대(외/과고)씩이나 갔으면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다니?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고 있는 거 아냐?”

 

대체 왜 이런 생각과 감정에 휘말릴까요? 상식적으로는 성공 뒤에 오는 허탈감 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모든 성취 뒤에 이런 증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본디 모습을 되찾는 게 맞습니다. 치료를 받아야 항 정도로 심각하다면 여기에는 다른 요소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이런 문제와 맞닥뜨린 서울대 학생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명문 사립대 두 곳에 합격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서울대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 감정 상태를 물으니 별다른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왜 그랬는지 설명해보라 하니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한없이 머뭇거립니다. 제가 마중물을 조금 부어주었습니다.

 

“무조건 서울대로 가야 해서 그런 것 아닐까?”

 

그가 무릎을 칩니다.

 

“맞습니다. 언제나 제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이 지속되었거든요. 모든 게 이미 정해져 있었죠. 그게 절 숨 막히게 했고, 한없이 공허하게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삶에서 그 자신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만든 입시제도, 사회적 분위기, 학교와 부모의 집착 등이 일사불란하게 강요하는 편향된 가치가 그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박탈해버린 것입니다. 입시가 끝나고 해방되었을 때 해일처럼 들이닥친 치욕감과 죄책감이 그 생명 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대 학생이 이럴진대 하물며 아우슈비츠에서 풀려난 사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때 그가 그 목숨에 손을 대는 것은 최초이자 최후로 삶에서 스스로의 선택권, 그 자유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무서운.

 

서경식은 프리모 레비가 “자살해버렸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이것이 본인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한 표현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놀라움과 맞물린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 지점에서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마치 우발적으로, 또는 끝내 견디지 못하고 그마저 그렇게, 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분명히 자신이 “바닥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의 존엄에 대한 인간적 도의를 모를 리 없는 그가, 40년에 걸쳐 결곡하게 증언하는 삶을 살아온 그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목숨을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 정도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는지요.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프리모 레비는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의 실상을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몸으로서 생명이든 마음으로서 생명이든 이미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애도와 헌정은 프리모 레비 이외에 아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최후로 자신의 생명을 저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에게 봉헌奉獻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음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의 숭고한, 그리고 비장한 삶, 딱 여기까지였던 것입니다. 사족 붙일 까닭이 있을 리 없습니다.

 

오늘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월호 수중수색 종료를 발표했습니다. 아홉 주검은 아마도 영원히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 그들을 위해 프리모 레비일 수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있기나 할까요? 프리모 레비와 유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특히 단원의 아이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함께하려 애쓰는 일,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힘을 보태는 일, 작든 크든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일·······실제로 소시민으로서는 막막하기 그지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증언과 봉헌의 삶을 살아낸 프리모 레비가 세월호 사건을 겪은 우리의 공적 양심으로 영원히 살아 있게 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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