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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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그러한 경험의 역사성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경험이 여전히 유효한 현재의 두려움을 향하고 있는가?

 

그러한 경험을 현재화한다는 것은 제 희망 중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제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 제는 우리가 그러한 경험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에요.(256쪽)

 

우리의 삶이 형성되는 시간은 두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입니다. 양적·객관적 시간입니다. 흘러가는 연대年代로서 시간입니다. 한 번 가면 그만인 평평한 시간입니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질적·주관적 시간입니다. 의미를 지닌 특이점을 형성하는, 날카롭게 솟아오르는 시간입니다. 실존의 결단과 기회로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Chronos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맥락으로 드러나는 연대기적 역사를 독일어로 Historie라 합니다. 이 역사는 과거에 묶이는 박제와 같은 역사입니다. 학문적 작업으로 정제된 역사입니다. 카이로스Kairos로 점멸하는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로 소환할 수 있는, 미래로 열어갈 수 있는 실존의 역사입니다. 이를 Geschichte라 합니다.

 

서양 역사철학이나 신학에서 나온 이해방식이라 이원론적·관념론적 냄새가 풍기지만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이런 식으로 문제의 대립각을 첨예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나치가 아우슈비츠를 Historie로 흘려버리려 했듯, 끝내 그 흔적조차 지우려 했듯, 이 땅에도 세월호를 단순 교통사고로 규정해 Historie로 흘려버리려는, 끝내 그 흔적조차 지우려는 세력이 준이蠢爾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흘려버린 Historie는 역사로 기록되어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망각된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의미도 힘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어둠의 세력은 자신의 폭력 현장을 모조리 Historie로 만들기 위해 음모·허위·조작·기만·은폐를 전천후로 자행하는 것입니다. 그 짓을 저들은 정치라 이름 합니다. 물론 아닙니다. 통치, 그것도 더러운 통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색하고 Geschichte를 구축해낼 책무가 있습니다. 저들의 음모·허위·조작·기만·은폐를 뚫고 망각을 저지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그러니까 현존하는 두려움에 직결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는 지금도 지구촌 도처에서 세워지고 있습니다. 세월호는 지금도 대한민국 도처에서 침몰하고 있습니다. 그 때 그들만 죽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시시각각 죽임 당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를, 세월호를 지금 당장 우리 면전에 불러올 수 있는 역사로서 Geschichte를 구축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것이 다름 아닌 진실입니다.

 

진실은 사실과 다릅니다. 사실에 입각하면 우리 아이들 250명은 죽었습니다. 진실에 입각하면 우리 아이들 250명은 살아 있습니다. 생물학적 사실의 실재actual reality만 실재가 아닙니다. 엄마 마음의 실재virtual/mindful reality도 실재입니다. 진실의 세계에서는 후자가 더욱 뚜렷한 실재입니다. 이 진실을 지켜내야 합니다. 진실을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2014년 4월 16일은 영원한 현재가 됩니다. 오늘은 206번째 4월 1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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