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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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욕망이 없는 사람이 지는 거다.”·······기실 욕망의 긍정이란 싸우는 자의 윤리가 아닌가.(708쪽)

 

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질문이 옹골차게 성립하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뜨겁게 불타야 합니다. 자기 삶이 활활 불타는 것이 아니면 타인에게 뜨거움이 되기는커녕 자기 자신에게조차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것이 되고 맙니다.

 

오래 전 애제자 한 녀석이 술좌석에서 정색하고 제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자신의 삶에 냉소적인 분이십니다.”

 

방향이 슬쩍 빗나간 베기였지만 입은 자상刺傷은 매우 깊었습니다. 저는 그 뒤 줄곧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너는 너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 때마다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너는 네 인생의 장작개비이기보다는 남의 인생의 부지깽이였다.”

 

 

제 자신의 삶에 극진히 임하지 못하고 남의 삶을 기웃거리는 알량한 오지랖으로 60년을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회한이 엄습해올 때마다 가슴에서는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연기의 뿌리 부분에 입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제 자신의 삶에 극진한 마음, 글쎄 명상이라면 명상이고 기도라면 기도인 것을 가만가만 올려놓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알 수 없는 한 순간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를 빌면서 후욱후욱 조심스레 불어넣는 것입니다. 성직의 길을 버린 지 실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진정으로 광활함the Spaciousness에 자신을 맡기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느린, 늘인 삶입니다. 새로운 이 시작은 전과 전혀 다른 시작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다시 새로운 뜨거움을 일으켜 남은 생을 가차 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가차 없는 삶은 필경 싸움이 될 터입니다. 이 싸움은 치료를 포함하면서 치료를 넘어선 인문운동, 아니 “인문전쟁”이 될 것입니다. 제 목숨의 인연에서 만나는 욕망의 실재를 인정한 터 위에 타자의 욕망과 마주하며 어떻게 해야 건강한, 그러니까 건전하지 않은 싸움을 싸울 수 있는지 찰나마다 곡진·결곡하게 질문하겠습니다. 이것이 싸우는 자의 윤리이며 스피노자가 찬미한 것이라면 그 또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근본적으로 삶을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태아기부터 청소년기 까지 일방적으로 부모의 공격을 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공격력은커녕 수비력조차 갖출 겨를이 없었습니다. 노다지 당하는 것이 단 하나의 생존전략이었습니다. 십대 끄트머리에 홀연히 찾아든 대칭성의 사유 틀 덕분에 성인기의 삶은 어느 정도 관통과 흡수의 모양새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생애 초기에 입은 트라우마 때문에 관통보다는 흡수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거래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따스한 시선으로 지키면서 열정을 다해 달리는 데 서투릅니다. 정당한 분노를 유지하면서 전략적으로 싸움을 이끌어가는 힘이 약합니다.

 

제 삶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제 개인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진실 말입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인 공격과 수탈을 자행하는 거대하게 기울어진 싸움판이 바로 우리사회입니다. 매판행위로 돈과 힘을 거머쥔 자들이 삿된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강도 살인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찾고 의로움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저들에 맞서는 싸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진실하고 의로운 욕망에서 나옵니다. 욕망이 어떻게 진실하고 의로울 수 있을까요? 슬픔이라는 수동적 정념passio을 자비慈라는 능동적 정서affectus로 전화해냄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이 싸움은 기쁨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닙니다. 슬픔을 담금질하는 힘으로 싸우는 싸움입니다. 생떼 같은 새끼를 잃은 슬픔에 감응하는 힘으로 싸우는 싸움입니다. 그렇게 싸워서 우울증에 빠져들지 않는 것입니다. 스피노자,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바야흐로 남의 인생 불 뒤적거리는 부지깽이 너머 장작개비로서 제 인생을 훨훨 태울 때가 왔습니다. 제 주위로 의로움의 열기와 진실함의 온기를 번지게 하는, 사람다움의 밝은 기운을 퍼지게 하는 삶을 시작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여기는 겨울 사막이 막 끝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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