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래 결핍인 것들은 타자에 의존해야만 기만적인 자기 확인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타자를 ‘제물’로 삼거나 ‘장식물’로 걸치려 한다.(685-686쪽)

 

이 두 문장은 전후 문맥을 전혀 전제하지 않고 읽어도 어디를 향한 글인지 정확하고 완벽하게 알 수 있는 STUDIUM을 지닙니다. 그런가 하면, 뒤 문장 생략 부분에 ‘~이라는’ 구체적 단어만 집어넣으면 어떤 PUNCTUM과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보편타당하되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각별하게 돋을새김되는 진실을 잘 맞물려 놓은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제 경우 대뜸 떠오르는 것은 끊임없이 제물 또는 장식물을 찾아 헤매는 환우들 모습입니다. 오직 자신의 결핍에만 집착할 뿐 타자와 정서적 상호교류를 거절한 채 떠돌고 있는 아픈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실과 이치를 외면하고 자신이 느끼는 호감 여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여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오랜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치료가 쉽지 않습니다.

 

아주 기민하게 사유의 확장이 일어납니다. 우리사회와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특별한 알레고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속에서 ‘결핍인 것들’이 준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결핍인 것들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제물로 삼았는지, 장식물로 걸쳤는지 신물 나게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역사적, 그러니까 정치적 시공에서 결핍인 것들은 아픈 개인과 달리 윤리적·법적 정당성이 결핍된 것들입니다. 그 결핍을 덮으려고 제물을 만들어냅니다. 방법은 매카시즘과 ‘사고’입니다. 그 결핍을 감추려고 장식물을 만들어냅니다. 방법은 신비와 연민입니다. 전지전능함으로 제물은 제거하고 장식물은 장려합니다. 당연히 백전백승입니다.

 

 

백전백승으로 자기기만은 목하 구약성서 급 내러티브를 쓰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양 99마리 가진 1%의 사유가 되고 손해는 양 1마리 가진 99%의 공유가 되는 기적이 더욱 기괴하고 섬뜩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의 종말이 뭘까, 자기기만은 생각 않기로 머리를 비웠습니다. 그 생각하는 순간, 기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