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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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미지가 최초로 발화(發火)하는 순간 그것은 독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낯선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이미지들은 낯선 가운데 그 안에 상처를 머금고 있는 것이어서, 그 상처가 독자의 상처를 건드려 점화되는 순간 그 이미지는 폭발한다. 폭발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낯선 것이었던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뼈아프게 낯익은 어떤 것으로 변한다.·······이것이 이미지의 운동이다.(563쪽)

 

번역1-시적 이미지의 점點적 찌르기는 시인의 punctum에서 비롯합니다. punctum은 마치 미분방정식의 특이점 같은 것이므로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낯선 것일수록 서정적입니다. 서정적일수록 선연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상처는 인간의 보편적 숙명입니다. 상처라는 숙명의 보편성이 studium으로서 독자한테 면面적 접속을 가능하게 합니다. 접속하는 찰나 가장 아픈 한 점을 찌르고 들어갑니다. 독자의 봉인된 상처에 구멍, 그러니까 punctum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뼈아픈 낯익음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이미지의 운동입니다.

 

번역2-시적 이미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낯설다는 것은 난해하고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그만큼 협소하기 때문이(고-인용자)·······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가 그만큼 진부하기 때문’(367쪽)입니다. 결국 낯설음의 요체는 광활함과 경이로움입니다. 무의식 속에 접어 넣었던 상처를 펴서 드넓게 하고 그래서 새로이 펼쳐지는 진실 때문에 낯선 것입니다. 이미지가 낯설면 낯설수록 상처를 도저하게 드러내므로 아프면 아플수록 상처는 높은 진동수로 공명합니다. 이것이 이미지의 운동입니다.

 

 

역해-내가 아플 때 두 가지 생각 속에 갇힙니다. 세상에서 내 아픔 같은 아픔이 다시 있으랴. 내 아픔을 아는 이 그 누구랴. 남이 아프다 할 때 두 가지 생각 속에 갇힙니다. 다들 그러고 사니까 징징댈 필요 없다. 네 아픔 내가 다 이해한다. 협소함과 진부함 때문에 자기 아픔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자아 밖으로 나가서 맑은 마음으로 보면 적어도 나만큼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됩니다. 아니 나보다 더 아파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사람도 보입니다. 지금 광화문에 청운동에 안산에 팽목항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낯설기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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