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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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하다’와 ‘고통 받다’는 다르다. 전자는 윤리적 능력이고 후자는 감각적 자질이다.(562쪽)

 

이 땅의 역사에서 한창 실천을 화두 삼을 때 유행하던 서구 어법 가운데 doing philosophy나 doing theology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강단에 서서 떠들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의 무력함을 넘어서려는 사회적 각성이 빚어낸 표현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으로 인간에게 영속하는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고통하다’를 그런 동명사적인 어법으로 바꾸면 doing pain이 될 것입니다. 한 사회의 본질은 가장 아픈, 그러니까 어두운 곳입니다. 2014. 4. 16 이후 우리사회의 본질은 단연코 세월호 학살의 아픔이 서리고 흐르는 곳입니다. 이 아픔을 자기 삶과 일치시키는 윤리적 능력이 갖추어질 때만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입니다.

 

 

고통 받다’는 그 아픔을 느끼고 감응하는 생명적 각성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윤리적 능력에 감각적 자질이 연대하지 않는다면 그 삶은 또 하나의 질곡일 것입니다. 아픔을 삶으로 받아들일 때 그 아픔을 생생히 느껴야 아픔이 건네는 내밀한 진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 소통이 없는 아픔은 고행 또는 학대일 따름입니다.

 

아픔은 인간 생명의 숙명입니다. 아픔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가치의 바다, 의미의 땅이 있습니다. 거기 이르기 위해 인간의 지성·의지적 깨달음과 감성적 느낌이 둘이면서도 쪼개지지 않고, 하나이면서도 포개지지 않는 경계사건의 맥락을 만들어야 전인적 실천의 길을 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이 어느 때보다 간절히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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