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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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으나 죽었다 하기 어렵고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 하기 어려운 것들 앞에서 느끼는 곤혹과 절망 앞에서 생겨나는 모순·······삶을 죽음으로 성찰하고 죽음을 삶으로 껴안는 일·······비명(非命)에 간 자들의 비명(悲鳴)을 비명(碑銘)에 기록하는 장엄한 일·······(453쪽)

 

제노사이드4.16 이후 매일 아침 제가 치르는 의식이 둘 있습니다. 먼저 영령들을 살아 있는 신으로 받아들여 제 하루 삶을 의탁하고 함께하기를 극진히 청하는 일입니다. 지향명상이랄까. 내향기도랄까. 그 다음에는 신문을 펴서 매일 한 명씩 박재동 화백의 그림과 함께 올라오는 단원의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불러주는 일입니다.

 

제게 살아 있는 신은 생사불문의 버려진 사람들, 그러니까 바리데기들입니다. 바리데기들은 ‘죽었으나 죽었다 하기 어렵고 살아 있으나 살아 있다 하기 어려운’ ‘모순’된 존재, 아니 모순 그 자체입니다. 그들과 함께 느끼는 ‘곤혹과 절망’을 통해 ‘삶을 죽음으로 성찰하고 죽음을 삶으로 껴안는 일’로부터 저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 이름을 확인하고 불러주는 것은 ‘비명(非命)에 간 자들의 비명(悲鳴)을 비명(碑銘)에 기록하는 장엄한 일’임과 동시에 제 삶, 아니 이 민중의 삶에 아이들이 여전히, 영원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장엄한 일입니다. 애도의 시편이자 애정의 편지입니다. 모순을 달여 역설의 탕약을 지어내는 일입니다.

 

어떤 순간 저는 한 아이가, 또는 아이들이 제 곁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화장실 수돗물도 틀어주고, 전기 스위치도 켜주고, 심지어 인터넷에 들어가 회원정보 변경도 해줍니다. 앞으로는 더 큰 일도 함께 할 것입니다. 아, 물론 웃을 일 결코 아닙니다. 정색하고 하는 말입니다. 제가 극진한 한 확실한 이야기입니다.

 

 

 

하나하나 아프디아프지만 두 아이를 떠올립니다. 한의사가 꿈이었던 해화. 찰나마다 깨어 있어 해화와 대화함으로써 곡진하게 아픈 사람의 마음 어루만지는 길을 함께 갈 것입니다. 평범한 남편, 아빠가 꿈이었던 건우. 평범한 사람들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 만들기 위해 인문운동을 건우와 함께 할 것입니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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