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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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가·······창안하는·······삶은 존재론적으로 어떤 (의미가 아니라) 힘을 갖는가,·······과연 윤리적으로 (선한 삶이 아니라) 좋은 삶인가. 말하자면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촉발(affection)의 텍스트는 몸을 자극하고 삶의 좌표를 흔든다.(403쪽)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물을 때, 그 ‘의미’의 지평은 과거, 그러니까 기존 질서에 닿아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선한가, 물을 때, 그 ‘선’의 지평 또한 과거, 그러니까 기존 질서에 닿아 있습니다. 그런 것을 묻기 위해 창안된 텍스트라면 그것을 구태여 문학이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국민윤리’ 교과서만으로 충분하기에 말입니다.

 

삶의 힘에 대한 물음은 ‘의미’를 허물어뜨리는 에너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아니 의미 이전의 생명력, 그 진동수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삶의 좌표를 흔듭니다. 촉발입니다. 삶의 좋음에 대한 물음은 ‘선’을 허물어뜨리는 도발성에 대한 물음입니다. 아니 선 이전의 생명감각, 그 쾌감을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몸을 자극합니다. 촉발입니다.

 

촉발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문학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텍스트를 향해 공감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연 짓는 모습은 각기 다릅니다. 물론 임상의臨床醫인 제 처지로 보면 이 경계는 루비콘 강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촉발은 치료의 영지에서 불어오는 향기를 맡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임상의는 시인이 아니지만 시의 미학을 체현해야 합니다. 임상의는 비평가가 아니지만 비평의 냉정과 열정 사이를 가로질러야 합니다. 마음병 앓는 이와 함께 증상을 옹골차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드러냄을 결곡하고 넉넉하게 만져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촉발이야말로 분수령입니다. 치료는 결국 자극하고 흔들어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담 또는 대화로 우울증을 치료해오면서 절실히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이른바 항우울제 따위의 약물로 뇌만 조절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울증을 앓으면 기분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인간다움의 근본 조건인 생명력과 생명감각도 손상됩니다. 자극하고 흔들어 삶의 전반을 바꾸는 인문치료가 필수적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노사이드4.16 이후 유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침륜되어 사회가 거대한 우울증 병동으로 변해갑니다. 여태까지 진행되어온 개별적·부분적 치료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정혜신 선생을 중심으로 펼치는 치료를 포함하면서 그것을 넘어 인문치료, 사회치료, 정치치료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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