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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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깊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바로 그것들이 이들의 역설적인 가능성이라고 저는 말하겠습니다. ‘깊이가 있다’는 것은 곧 그곳이 3차원의 세계라는 것을 뜻합니다.·······중심이 있고 주변이 있고 그 사이에 지배(정치적 공간)가 있습니다.·······2차원으로 돌아가면 지배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 제거될 것입니다. 4차원으로 나아가서 제4의 축인 ‘시간’을 도입하면 지배관계가 관철되는 시간의 질서 자체를 흩뜨려버릴 수 있습니다.(284-285쪽)

 

문학, 예술을 거론하는 자리니까 깊이 이야기가 나온 것이지 사실 정치의 공간에서는 깊이라는 개념이 가당치 않습니다. 깊이 있는 정치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권력은 돈과 연동되어 한사코 ‘높이’ 올라가려고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힘없고 돈 없는 ‘아랫것’을 밟아대며 키들거리는 장면에서 ‘근본 있음’의 인증샷이 성립되는 공간이 정치판입니다. 물론 정치가 일단 올라가면 영원히 내려오지 않으려 하는 ‘높이’는 지배와 소유를 위한 구조적 경사를 의미합니다. 기품·격조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지배-복종 관계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수탈의 일방적 미끄러짐을 막기 위해서는 깊이든 높이든 그 가파른 경사를 없애야 합니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시共時적synchronic 차원의 고르기입니다. 2차원 평면, 그러니까 평등한 정치지형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민nation, 정확히는 민중people에게 주권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높이, 서정의 차원에서는 깊이, 앉아서 통치하거나 계몽하려는 삿된 시도를 무화無化하는 것입니다. 붓다 버전으로는 무아無我입니다. 공자 버전으로는 중용中庸입니다.

 

다른 하나는 통시通時적diachronic 차원의 고르기입니다. 과거에 기반을 두고 현재와 미래를 선형적으로 통제하려는, 동요를 차단하려는, 권력과 부를 영속화하려는 삿된 시도를 무화하는 것입니다. 변화로만 나타나는 진실을 유연하게 세계 속에 번져가게 하는 것입니다. 붓다 버전으로는 무상無常입니다. 공자 버전으로는 시중時中입니다.

 

 

공시적으로든 통시적으로든 우리사회의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더욱 강고해지고 있습니다. 미상불 정치적으로는 이 추세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문에 길이 있을 것입니다. 증상에서 치유까지 다양한 인문의 줄기들이 변방을 엮어 흔들어서 중심을 깨뜨리지 않는 한 미래는 우리 모두를 이끌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할 것입니다, 저 세월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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