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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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하자면, 시는 외국어로 쓰는 것이다.(239)

 

단도직입, 이렇게 절벽 끝으로 밀어버립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시는 외계어로 쓰는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듯 인간의 정신상태 중 가장 제대로인 것은 바로 정신분열 상태입니다. 모순의 공존, 그러니까 역설이 현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가장 제대로인 그 상태가 그러면, 왜 병일까요? 당사자가 그 진실을 모른 채, “무심코너부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실을 알고, “유심히”, 그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다름 아닌 시입니다, 그것도 외계어로 쓴.

 

읽는 이가 함부로, 대뜸, 알아먹으면, 그러므로 당최 시일 수 없습니다. 어렵다는 말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접힌 마음으로 어찌 펴진 마음을 한 눈에 알아보겠느냐, 는 말입니다. 접힌 자의 눈에는 펴진 자가 사람이 아닙니다. 외국인은, 적어도 사람입니다. 외계인은, ‘자가 붙어 있으되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아닌, 헛것의 언어로 쓴, 증상으로서 시는, 그러므로 언어를 깨뜨림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시는 손으로 읽습니다. 뜨거운지, 차가운지, 딱딱한지, 무른지·······대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코로 읽습니다. 살과 숨의 냄새를 맡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귀로 읽습니다. 신음 소리를 들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읽는 것은 나중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단診斷으로서 시 읽기입니다. 진단으로서 시 읽기는 제가 의자醫者이기에 지닌 감수성에서 온 것입니다.

 

저는 이런 진단을 -진단이라 합니다. 아픈 이에 기대어 일일이 살피는 겸손한 진단입니다. 한의학에는 이런 진단을 천명한 <상한론傷寒論>이라는 텍스트가 있습니다. 반대로, 한 눈에 척 봐도 다 아는 권위주의적 진단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진단이라 합니다. 이런 진단을 제시한 <황제내경黃帝內徑>이라는 텍스트가 있습니다. 논은 설이고 경은 법입니다. 논은 일리一理를 제시하고 경은 진리眞理를 선언합니다. 논은 서로 다름을 전제하고 경은 서로 같음을 강제합니다. 주류 한의학은 <황제내경>을 추종하므로 당연히 경-진단에 의존합니다. 저는 그저 서로 다른, 일리 있는, 설을 말할 뿐이므로 논-진단을 합니다.

 

-진단으로 다가서야 아픔에, 그러니까 시에 제대로 배어들 수 있습니다. -진단은 끝내 시는 물론, 시인과 독자 모두를 속이고 맙니다. 우리는 이미, 이제 뼈저리게 겪고 있습니다. 이 기만의 시, 그 시가 은폐해온 세상 말입니다. 우리가 누려온 서정의 옥토에서 무럭무럭 자란 매판과 독재, 그리고 썩은 종교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나라에 왔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이자 바티칸의 국가수장이지만 전능한 신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 어둠은 그가 빛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슬픈 일입니다. , 성호 엄마가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닌 교황의 손을 잡고 울어야 하는지요. , 이 나라 대통령은 그 엄마 손 잡은 교황 뒤에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어야 하는지요. 그 대답을 대체 누가 해야 하는지요. 바로 이 시공에서, 시는, 시인은, 시 읽는 이는, 과연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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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7 1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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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8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