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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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을 통해 지시대상 자체를 소멸시키고 사건을 추상화해서 이미지의 구조물로 전환시킨다. 바로 그 순간·······소위 ‘환상’적인 것이 되며·······환상은 대개 ‘과잉’적인 것으로 나타난다.·······‘과잉’으로 치달으면서 자주 드러내는 현상 중의 하나는 공격적인 신체 훼손과 기관 분리 현상이다.·······소위 ‘환상’이란 그러므로 언어화·상징화에 저항하는 현실의 ‘실재’를 직접적으로 현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면서 동시에 의식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욕망’이 아니라 신체의 층위에서 작동하는 ‘충동’의 운동을 포착하기 위한 시도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살아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를·······면도칼(환상)로 자해하여 흘리는 붉은 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실재를 환상으로 착각하지 말라.’(221-222쪽)

 

이른바 초기불전에 따르면 붓다의 가르침의 요체는 해체였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얼굴이 예쁘다, 할 때 그 생각은 우리가 늘 보아온, 그래서 관습적인, 그러니까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히는, 얼굴 전체의 느낌에 터한 것입니다. 눈, 코, 입들을 따로 떼어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고, 나아가 더 작은 단위로 잘라 보면, 예쁘다 뭐다 할 것도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릅니다. 이렇듯 우리가 휘둘리는 대부분의 미망이 관습적인 덩어리 식 생각 때문입니다. 덩어리를 해체하면 비로소 진실의 문 입구에 서는 것입니다.

 

관습적인 언어와 상징은 욕망의 체계입니다. 욕망의 체계는 권력입니다. 권력은 정상적 이의 제기로 자신의 견해를 바꾼 적이 없습니다. 치열한 왜곡을 통해 소멸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주도면밀하게 추상화해서 전환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곡과 추상화가 바로 ‘환상’입니다. ‘환상’은 피 흘리는 자해, 그러니까 신체 훼손과 기관 분리를 감행하는 면도칼입니다. 면도칼로 긋는 ‘과잉’이 아니면 실재의 현시, 신체적 충동,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느낌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관습적 서정이 우리로 하여금 실재를 환상으로 착각하도록 중독되게 했으니 ‘과잉’ ‘환상’으로 해독하는 것입니다. 이독제독以毒制毒!

 

 

세월호참변으로 희생된 아이의 아버지가 죽음을 각오한 단식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과잉처럼 보입니다. 자세히 봐도 ‘과잉’입니다. 얼핏 보면 환상입니다. 자세히 봐도 ‘환상’입니다. 이 ‘과잉’ ‘환상’ 없으면 진실이 묻히고 말 것입니다. 이 ‘과잉’ ‘환상’이야말로 유일한 ‘엄정’ ‘실재’입니다. 이 땅의 관습적 언어와 상징이 얼마나 깊은 중독 상태에 있는지를 너무나도 잔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중독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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