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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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자아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누군가 말한다(On parle)’의 형식을 취하는 익명의 중얼거림’(들뢰즈)·······화자와 청자가 일정한 형식을 전제하고 준수하는 고백과는 달리·······말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는 뜻에서 독백이라 부를 수 있을·······‘떠도는 말들은 기왕의 고백이 어떤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상이다. 증상은 질문이다. 아름다운·······독백들은 종래의 서정적 고백의 형식이 어떤 미학적 곤경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고 있다.(216-217)

 

고백은 본디 (숨겼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으로까지 나아가면 고해告解와 동의어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서정시에 이르러서는 또 하나의 상상적 자아를 창조하면서 진실을 한 번 더 회피하는”(212) 전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인도 인간이고, 인간인 한,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아픔에게 시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어찌 대하는가에 따라 시를 치유 또는 완화의 도상에 놓을 수도 있고, 방어 또는 악화의 도상에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치유하려는 자는 감응(response)하고, 방어하려는 자는 반응(reaction)합니다. 감응은 아픔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이고, 반응은 쫓아내려는 자세입니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엄밀히는 접힌 부분을 활짝 펴서, 그러니까 예술적으로, 정확하게 드러내고, 쫓아내려는 자세는 진실을 일부는 과장하고 일부는 축소해서, 병적 자아 중심으로 접어서 드러냅니다. 펴진 증상은 제대로 질문이 되고, 접힌 증상은 그대로 훈계가 됩니다. 질문은 샘이 되고, 훈계는 늪이 됩니다.

 

고백은 그러면 어떻게 늪이 될까요. 이때의 고백은 설정입니다. 고백자의 매혹을 드러내 듣는 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한 패가 되는 것과 함께 치유하는 것은 다릅니다. 패거리는 진실을 엄폐하고 치유연대는 진실을 엄호합니다. 마음치유 현장에서() 종종 패거리가 형성됩니다. 과정상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테지만 종당 패거리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오직 진실이 주는 걸림 없는 연대, 자유의 네트워크가 남을 뿐입니다.

 

 

 눈물 흘리며 날린 설정고백이 수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허위와 조작의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현실을 우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목도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패거리가 사회와 역사를 부끄러움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때, 고백 앞에 질문으로, 증상으로 마주서는 독백이란 참으로 대수로운 사소함일 것입니다. 물론 궁극적 화두가 하나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말입니다.

 

독백에서 쟁백諍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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