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에티카 - 신형철 평론집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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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것을 사랑해버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이 사실의 준엄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타인의 타자성을 승인하는 태도는 ‘나’ 자신의 폭력적 이면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보는 타인이 사라지면서 타자가 드러나고, 타자가 드러나면서 내가 바라보는 ‘나’가 해체된다.·······자아의 전횡이 금지된 곳에서 타인의 타자성이 분출하며 그 타자성이 내 안의 타자성을 또한 호출한다.·······‘나’와 타자의 잔혹하고 끔찍한 욕망의 핵심부에 있는 어떤 미지(未知)를·······질문하는·······이것은 서정적이기를 사양하는 세대의 사랑법이다.(194-197쪽)

 

 

주체로 ‘한 꺼풀 벗겨지기’(괴테) 이전의 자아에게, 타자로 ‘한 꺼풀 벗겨지기’ 이전의 타인은 모두 자아의 연장에 있는 환유 대상일 뿐입니다. ‘서로주체’(김상봉)가 아닙니다. 그 타인한테서 자아의 모든 비밀과 치부는 보호됩니다. 타인의 타자성, 그러니까 ‘서로주체성’을 승인함으로써 자아를 해체하고 나면 온갖 무서운 것들과 우스운 것들이 생으로 드러나 자아를 둘러쌌던 신비적·권위적 서정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 까발려진 뒤의, 뒤에, 주체끼리 만나서 나누는 사랑은 무엇보다 ‘사랑해버리는 것’ 따위의 짓은 아닐 터입니다. 잔혹으로 삶아지고 골계로 볶아지면서 생겨나는, 설렘과 두려움이 엇갈리며 내다보이는, 그 또한 ‘미지(未知)’의 무엇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장차 올 사랑이 무엇이든 간에 ‘잔혹하고 끔찍한 욕망의 핵심부’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서정에 터한 사랑은, 결코 사랑의 진경이라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달콤하고 황홀하며 환희에 찬 순간으로만 점철된 사랑은 설정 아니면 중독, 적어도 바람처럼 지나가고 말, 또는 지극히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그 무엇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이 아주 끝났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 부정되고 뒤엉키며, 심지어 뒤바뀌는 참혹한 폭력을 겪어낸 뒤 비로소 움트는 사랑, 애쟁愛諍이 옵니다. 피투성이 모습을 서로 물끄러미 쳐다볼 때 스멀스멀 기어드는 애롱愛弄이 옵니다. 예쁘지 않아 도저한 사랑입니다.

 

 

우리사회는 시방 이 도저한 사랑을 아프게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사랑을 안다고도, 한다고도 못 하는 수준입니다. 의료보호 대상자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겠노라, 나서는 이 우세현상이 결정적 증거입니다. 아직, 세월호참변을 교통사고라고 해야 나라 사랑인 세상입니다. 여전히, 세월호참변을 국민트라우마라고 말하는 것이 종북의 선동쯤인 세상입니다. 주류는, 다수는 냉연합니다. 일상으로 복귀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 일상이 아니었던 나날은 결코 없었습니다. 민중은 그들의 동일화·단일화 대상이었을 뿐 단 한 번도 타자성이 승인된 적은 없습니다. 민중은 그들을 언제나 용서하였습니다. 심지어 잊어주었습니다. 이 일방적 오지랖이 오천 년을 망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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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1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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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31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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