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5
김선우 지음, 양세은 그림 / 단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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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휘여, 아프구나-“·······무장승이 이불을 끌어당겨 바리공주에게 덮어주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지붕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순식간에 방 안 가득히 박쥐 떼가 소용돌이치듯 밀려들어·······바리공주를 향해 일제히 덤벼들기 시작했다.

“물러가! 내 손님이라니깐!”

손을 휘저어 박쥐들을 막으며 무장승이 소리쳤으나 약수 변에서와는 달리 박쥐 떼는 더욱 요동쳤다. 눈알이 모두 붉게 변한 박쥐 떼가 찌잇찌잇 그악스럽게 울며 바리공주를 할퀴고 물면서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무장승이 박쥐들을 떨쳐내며 다급히 바리공주를 품에 안았다·······”(146-147쪽)

 

황금 빛 박쥐가 무장승과 바리공주 사이에 두 번째 등장합니다. 첫 번째 등장은 무장승이 손을 내밀게 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번 등장은 무장승이 바리공주를 품에 안게 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상상력이 한계에 도달할 때 요즘 통속한 드라마 작가들은 우연한 교통사고를 집어넣어 매듭을 풀지만 김선우는 무장승의 무의식과 현실 세계의 에너지를 새 떼로 이미 연결시켜 놓고 유類적으로 문제를 풀어 나아갑니다.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황금박쥐의 추억과 이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1년 전 이 장면을 김선우는 이렇게 풀어낸 바 있습니다.

 

·······알 수 없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이 사람의 정체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뒤척이다가, 무장승이 가만히 손을 뻗어 바리공주의 앞섶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천천히 섶을 헤치며 가슴 안쪽까지 무장승의 손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여인이다·······.

무장승이 깊은 숨을 들이 쉬었고 순간 바리공주의 손이 무장승의 손을 저지하는가 싶더니 단번에 눈을 뜨며 일어나 앉았다.·······바리공주가·······말문을 열었다.·······목소리는 단호했다.·······

여인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고 무장승은 여인을 범하려다가 들킨 꼴이 되고 말았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심사가 당연하였다.”(「바리공주」136-137쪽)

 

이런 풀어내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청소년을 독자로 삼고 보니 더욱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장승 편에서나 바리공주 편에서나 께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리공주는 알고 있고 무장승은 모르는 이 어긋남 또는 아이러니를 해결할 수단은 모르고 있는 무장승 쪽에 장치하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미상불 새 떼, 특히 박쥐 떼는 이렇게 탄생하였을 것입니다.

 

정반대의 어긋남 또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하늘이 바리공주를 무장승의 아내로 점지했다는 사실을 무장승은 알고 있고 바리공주는 모르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둘의 해결 방식이 다릅니다. 이 해결에는 새 떼 같은 장치가 없습니다. 사흘 동안 꼼짝 않고 앉아 약수藥水를 품은 신목과 묵언 대화함으로써 바리공주 스스로 답을 찾았습니다. 그 답, 그러니까 사랑을 들고 바리공주가 먼저 무장승에게 청혼하였습니다. '여자사람' 바리가 주체적, 능동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아간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에는 한결 성性인지적 관점(여성주의라는 용어가 혹 김선우를 옭아매는 게 아닐까 싶어 이 용어를 택하였습니다.)이 돋을새김 되어 있습니다. 김선우가 11년 사이에 더 깊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청소년을 독자로 상정했을 때 김선우의 마음결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했을 때보다 좀 더 맑은 궁금증과 좀 더 뿌듯한 기대감을 지닐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세월호 참극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듯 이 나라의 어른 사람들, 특히 헤게모니블록에게는 성인지적 관점이나 성 평등에 관한 말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청소년의 말랑말랑한 영혼에 품은 김선우의 설렘이 무한히 번져가기를 삼가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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