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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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대화에

말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말과 말 사이다.

 

대화에는

말보다

말과 말 사이가 더 많다.

 

말과 말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말은 대화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 오랫동안 마음 아픈 사람들과 대화/상담 치료를 함께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따스하고 정확한 치료의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낫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 자체는 본디 실체적 힘이 없습니다. 말이 끝난 자리에서 열리기 시작하는 틈, 곧 침묵 속에서 아픈 사람 스스로 말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고 일어섬으로써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상담자의 핵심적 임무는 아픈 사람이 자발적으로 병 앞에 서도록 허공을 열어놓는 일입니다. 무슨 말을 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말은 침묵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오래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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