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전문

 

*              *             *

 

마흔 다섯에 한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십오 년째 의자(醫者)의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찌 하면 나를 찾은 아픈 사람들을 잘 치료할 수 있을까, 섬세하게 문진(問診)합니다. 삶의 과정, 현재 주변 상황까지도 챙깁니다. 다른 醫者에 비해 자상하다는 평가에 묻혀 안일하게 지냈습니다. 어느 순간 벼락 같은 음성을 듣습니다.

 

"問診에 앞서 문병(問病)하라."

 

醫者이기에 앞서 인간이니까 말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 묻기 이전에, 그래 얼마나 아프냐, 물어야 하니까 말입니다. 직업의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아픈 사람 옆에 나란히 누워 눈길을 건네고 아픈 사람이 눈물 쏟아내는 것을 온 영혼으로 받아 안아야 사람이고, 사람인 다음에야 醫者라는 진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아픈 사람이 아픔을 묻는 사람에게 도리어 위로와 치유로 번져온다는 진실. 

 

세월호 참사와  정권의 참람한 행위 때문에 온 백성이 분노, 슬픔, 그리고 우울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醫者로서,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근본 품격을 놓치고 허둥대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반성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또 그럴 수 있다는 뜻이므로. 저는 지금 고백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나는 괜찮은 놈이다 라는 자랑질일 수 있으므로. 이 순간 제 삶을 향해 죽비를 내리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맥 잡기 전에 손부터 잡아, 할(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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