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웬만한 인기학과보다 한의대 가기가 더 어렵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마흔 넘은 나이로 한의대 가겠다고 수능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년 이상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한 내게 고교 이과 수학은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하여, 수학책만 열한 권을 싸들고 용인 백련암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루에 열다섯 시간 씩 참선하듯 수학문제를 풀었습니다. 공부 사이사이 뭉친 마음이 탁 풀어지게 하는 휴식법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닥에 예쁜 꽃 그림이 그려져 있는 조그만 세숫대야에 미리 맑은 물을 떠놓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만히 책상에서 물러나 세숫대야 앞에 앉습니다. 심호흡을 한 뒤 고요히 손을 씻습니다. 초르르 초르르 똘랑똘랑....... 영롱한 물소리가 영혼의 갈피마다 번져갑니다. 결코 길지 않은 그 시간 동안, 그러나 가뭇없이 아득하게 삽상함, 맑음, 가벼움, 풀림, 안온함의 바다로 흘러갑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醫者로 살아가는 일이 아내의 발자국 소리처럼 익숙해진 요즘, 심리 상담을 하거나 침을 놓은 직후 나는 언제나 손을 씻습니다. 단순히 위생적인 이유만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아픔, 그 내력, 드물지 않게, 불평을 토로하며 이리저리 마음결 헤집어 흔드는 환우들의 마음에 섞이고, 몸에 닿고 나서 손을 씻으면 그 즉시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 거의 무심코 했던 행동을 이제는 완전 유심히 하는 것입니다.

 

최근, 어떤 감정적 쏠림과 그에 대한 합리화를 유발시키고 나서 손을 씻게 했더니 그 쏠림과 합리화 사고가 사라졌다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손을 씻으면 마음도 깨끗해진다는 진실이 실험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이 연구 결과를 확인하면서 심리치료의 과정에 환우 스스로 손 씻기 또는 치료자의 손 씻기기를 도입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세밀하게 이 생각을 다듬어 실천에 옮기려 합니다. 자못 의미로운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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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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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1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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