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스 웨이 - 넬슨 만델라의 삶, 사랑, 용기에 대한 15개의 길
리처드 스텐절 지음, 박영록 옮김, 넬슨 만델라 서문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아내의 서가에서 우연히 집어든 이 책의 목차를 일별하다가 열네 번째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부분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무슨 내용이 들어있을지 짐작하면서 거기부터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인전이든 회고록이든 남 살아온 이야기 안 읽는 제 독서 원칙(!)에서 보면 비교적 신속한 결단이었습니다.

 

정작 큰 울림을 느낀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용기를 다룬 제1장 내용과 이미지를 다룬 제5장입니다. 제게는 이 두 장이 하나의 흐름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니까, "용감한 척하면 용감해진다."는 말과 "겉모습은 실체를 구성한다."는 말이 같은 내용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제1장에서 만델라가 "두려운 게 없다고 해서 용기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진의를 모른 채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두려움 없는 상태는 그냥 미분화된 감정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기는 미분화된 감정 차원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 그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용기는 마음에 두려움을 지닌 상태에서 몸으로 그 두려움을 떨쳐내는 결단을 요구하는 무엇입니다. "누군가는 용감한 척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바로 이 말이 근거가 됩니다. 그 필요를 알아차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용기라는 사건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용기는 누군가 지니고 있는 덕목으로서 명사적 존재가 아니라 찰나마다 결단을 통해 발휘되는 동사적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용감한 척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위선을 떠는 행위가 아니고, 애써 결단을 내리는, 그래서, 분화된, 이성과 의지까지 알아차리는 '고급한 감정' 차원의 행위입니다.

 

바로 이런 행위, 즉 "겉모습"이 두려움을 밀어내는 용기의 역동적 "실체"를 구성해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진실을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고 깨닫고 습관으로 만들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말들의 연결이 전혀 무의미한 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인의 아픈 마음 어루만지는 일을 하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자신의 상처와 punctum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인의 슬픔과 요구, 심지어 공격까지 품어 들이는 흡수의 감수성이 지나치게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흡수의 마음은 용기보다는 관용을 요구합니다. 용기는 강인함, 단단함에 방점이 찍히고 관용은 너그러움, 부드러움에 방점이 찍힙니다.

 

용기는 관통하는 힘입니다. 바로 이 "관통"이 제 삶의 긴절한 화두가 되고 있는 길목에서 이 책은 조금 더 구체적인, 한 걸음 더 나아간 도움을 제게 주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끌어내고 품어 들이는 만큼이나 나의 고통을 드러내고 꿰뚫어 나가는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낄 때, 대체 어찌 하면 그리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고뇌하게 되지요.

 

만델라의 길에 런 이정표가 붙어 있습니다.

 

"관통력 있는 척하라!"

 

또는,

 

"관통력 있는 겉모습을 갖추라!"

 

정녕, 용기가, 관통력이 요구되는 시공간이 우리를 휩싸고 있습니다. 문득, 죽음을 바로 코앞에 놓고 용기의 한 발짝을 내디딘, 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한 만델라를 떠올립니다. 나는 나의 만델라가 되어야 한다고 영혼에 새겨 넣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_()_

 

* 전에 썼던 리뷰를 조금 매만져 애도의 글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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