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생리대의 순 우리말을 아는가? ^^ ‘개짐’이라고 한다. 참으로 예쁜 말이다. 본디 옛 우리 여성들이 월경을 겪을 때, ‘몸 가지다’라고 표현한 데서 온 것이다. 그러면 몸을 가진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피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기에 쓴 재치 넘치는 반어법일 수도 있다. 월경 기간 동안 남자들이 얼씬거리지 않으니 그렇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월경 현상이 없을 때의 ‘아이 가지다’라는 상황과 대칭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여성이 자신의 몸을 각별하게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묘사임에는 틀림없다.


이 알아차림에 터 잡아 월경에 대한 생각을 돋을새김 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월경은 단지 자궁에서 흘러나온 불필요해진 핏덩어리가 아니다....... 여성 성기의 하트와 자궁의 하트와 심장의 하트, 이 여러 개의 심장이 뿜어내는 생명력의 에너지는 겹치고 연결되면서 서로를 격려한다. 여러 개의 심장이 몸의 중심에서 피워낸 월경이라는 물질적인 증후를 긍정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불완전해진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이 겹쳐진 심연의 핏방울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141-142쪽)

 

라고 한, 김선우의 이 미학적이면서도 의학적인 지적이 우리 삶의 완전성을 위하여 월경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을 확보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경에 대한 전체적인 생각에 따르면 일대 전복(顚覆)이 일어난다. 월경은 임신의 실패가 아니다. 임신은 초경에서 시작하여 완경으로 끝나는, 월경이라는 저 장대한 역사의 부분적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월경-임신-출산-육아-완경의 기나긴 과정은 여성의 한평생을 쥐락펴락하는 파동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에 터 잡아 빚어낸 의학이 산부인과의학이란 이름으로 지엽에 자리 잡은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다만 여성에게 일어나고 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강용원의「안녕, 우울증」122쪽)


따라서, 여기서, 그쳐서, 는 안 된다.


월경에 대한 사유는 정치(精緻)해야 한다. 정치 경제 문화의 구심에 여성을 들여놓기를 거부해온 남성중심의 역사 속에서 온갖 오해와 무지로 범벅된 채 오랜 세월 배제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월경 중의 여성은 불결한 존재로 취급되어 신성한 장소에 접근이 금지되었고....... 남성 중심의 의학적 관점은 월경을 손실과 실패의 경험으로 내면화시켜 오곤 했다....... 월경의 주체인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월경을 긍정하지 못하도록 내면화되기 일쑤였고....... 아직도 월경을 더럽다, 귀찮다, 소모적이다, 원죄다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흔하다.”(142-143쪽)


월경의 일부 사건, 임신으로 빚어진 인간의 진실을 정치(精緻)하게 들여다보면 일대 혁파(革罷)가 일어난다. 여성은 결핍된 성이 아니다. 남성이 부가된 성이다.


세상의 반이 남성이지만, 그 남성 모두는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양적으로는 1대1이지만 질적으로는 1대1이 아닙니다. 본디 모든 성은 여성이고, 안드로겐 세례를 받으면 남성이란 성이 부가됩니다.”(강용원의「안녕, 우울증」120쪽)


부가는 덤이다. 없어도 되는데 있으면 즐거우니까 보태는 거다. 물론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남녀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여성이 창조한 바고, 월경이 빚은 바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벼락 맞은 듯, 이 진실에 화들짝 깨어나야 할 존재가, 바로 남성 아닌가. 한 개인으로서는 죽는 순간까지, 인류 전체로서는 멸망의 순간까지, 남성이 여성의 아들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늙어도, 아무리 성숙해도, 아무리 경지에 올라도, 어머니를 넘어서는, 그러므로 여성을 넘어서는 남성은 없는 게 천하 이치다.


그 천하 이치는 이 작디작은 한 마디 말에서 비롯한다.


엄마, 꽃이 비쳤어.”(145쪽)


이제 우리가, 특히 남성이 삶을 완전성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세울 깃발, 그 아래 풍경은 이렇다.


햇빛과 바람 속에서 환하게 나부끼는 희디흰 천들....... 오늘 광장에 나부끼는 생리대들 속에 내일은 월경혈이 선명하게 묻은 생리대가 나부껴도 좋겠고.......그 광장으로 구름이 목화 꽃처럼 내려앉아도 좋겠고 얼굴 맑은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월수(月水)를 받아 마시고 해탈에 이른 과거와 미래의 구도자들을 상상해도 좋으리라.......”(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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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6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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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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