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누른 카메라 셔터 속에 정지되어 있는 사람들. 정지된 시간은 정지된 바로 그 순간부터 인간의 관습적 사고가 흔히 향해가는 지점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자신의 시간을 움직여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표상이 정지한 바로 ‘그’ 순간의 무의식은 일상적인 지시 체계로부터 벗어나 한없이 자유로운 호흡을 시작한다. 정지된 시간은 전혀 엉뚱한 지점에서 무언가를 낳고 있는 시간이다.” (72쪽)


천하시인 김선우다운 통찰이다. 나는 문득 도덕경 제1장을 여기다 포갠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통속한 도덕경 해석을 따르면 어긋난 포갬일 테다. 그러나 해석을 정신의학의 후각으로 접근하면 이 포갬에 공감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한답시고 약만 가지고 덤비면 이런 진실을 만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치료를 넘어 전인적 치유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치유상담이다. 마음의 병은 그 자체로 이야기인 병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이 스스로 하는 자기 이야기가 치유의 관건이다. 이것을 나는 자기언급(self reference)라 한다.


자기언급은 의학용어가 아니다. 철학용어다. 이것을 의학 안으로 들여와 치유상담 임상 현장에 적용한 것이다. 자기언급은 환자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표현하는 행위 자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표현된 풍경이다.


자기언급으로 표현된 병적 상태의 자기 내면 풍경은 표현된 순간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된다. 그 순간, 화면은 정지하고 흐르는 생명에게서 분리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통속한 해석으로도 포착이 가능한 진실이다.


문제는 표현된 풍경의 정지 화면을 만드는 행위와 그 행위를 빚어가는 사람 사이의 무엇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자기 풍경 만들기를 계속하는 모순된 행위 주체는 순간마다 그 풍경과 다른, “엉뚱한” 시공으로 자기 자신을 형성해간다.


행위와 행위자 사이에서 창조되는 엉뚱함, “한없이 자유로운 호흡”, 바로 이게 치유상담이 바라는 바다. 모순을 달여 역설로 빚어내는 행위, 바로 이게 치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덕경 제1장 해석은 전복된다!


도를 도라 표현하는 순간, 비상한, 그러니까 “엉뚱한”, 그러므로 “한없이 자유로운” 치유의 도가 된다. 우울(증상)을 우울(증상)로 표현하는 순간, 비상한, 그러니까 “엉뚱한”, 그러므로 “한없이 자유로운 호흡”, 곧 치유된 우울, 기품 있는 인격이 된다.


비상(非常)은 통속한 해석에서처럼 부정적인 의미의 볼모로 잡을 것이 아니다. 비상은 그야말로 비상한(surpassing) 것이다. 그 비상함은 정지된 시간, 거기 담기는 풍경을 빚어내는 “바로 ‘그’ 순간의 무의식”의 해방이다.


물론 무심코 저지르는 정지는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유심히 빚어내는 정지가 비상한 자유를 낳는 것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모름지기 문득, 문득, 알아차리고 숨을 멈출 일이다. 거기 치유가 숨 쉬고 있다. 엉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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