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 개정판
김선우 지음, 우창헌 그림 / 단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들이 될 일 아니라며 말렸지만, 나는 의자가 피워낸 ‘꽃’ 덕분에 국민 드라마 <허준>이 한의대 커트라인을 천정부지 끌어 올렸던 2000년, 사십대 중반 나이로 한의대에 합격했다. 그 누구보다 나는 내 자신한테서 인생 최고의 축하 인사를 받았다. 축하 인사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한의학의 시공간이 내가 삶의 기조로 자리 잡은, 질긴 우울증을 앓아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삶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스스로 우울증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료는 동시에 깊고 넓은 공부가 되었다. 한의학은 물론 서구 정신의학의 교과서적 지식이 알지 못하는 우울증의 세계를 탐색하면서 새로운 진단, 치료 패러다임을 빚어갔다. 우울증은 단순한 기분장애가 아니고 생명과 삶에 대한 자세에 생긴 치명적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독자적인 상담 이론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우울증의 본령은 자기 존재에 대한 모멸과 부정이다. 다시 말하면 한사코 자기 자신을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다른 존재, 즉 유령들이 바글거린다. 그러므로 그 바글거림은 결국 텅 빈 무엇이다. 하여 우울증을 치료에서 자기 자신을 자기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은 필수불가결하다. 김선우의 의자가 빛을 쏘는 순간이다.


의자에 앉는 순간 우리는 풍경의 중심이 된다. 중심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비어 있는 의자에 누군가 앉는 순간 새로운 중심이 생긴다....... 무언가 담는 순간 의자는 빛나기 시작한다. 중심으로 이동한 의자는 빛나기 시작한다. 중심으로 이동한 의자가 빛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의 우울은 이미 치료되기 시작한다.”(35쪽)


그렇다. 그래서 김선우 의자는 역설이다. 김선우 의자는 경계여서 중심을 사로잡는다. 김선우 의자는 텅 비어 있어서 충만한 앉음을 호린다. 김선우 의자는, 이렇게, 매혹이다. 김선우의 매혹 의자가 만들어내는, “관능적”(33쪽)인 경계의 틈에서 일으키는, 자유로운, 섹시한 사건들은 실로 웅숭깊은 중심의 치유를 행한다. 우울증 앓는 이가 김선우 매혹의자에 앉으면 명품 인간으로 빛나지는 까닭이 여기 있다.


나는 오늘도 김선우의 매혹의자에 앉는다. 거기서 우울증을 달여 낸다. 나는 오늘도 김선우의 매혹의자를 비워놓는다. 거기 앉아 우울증 달여 낼 누군가를 기다린다. 자기 자신을, 현실 삶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낭창낭창함으로 변방과 중심을 가로질러 역설을 빚어낼 때, 나와 그 누구는 함께 김선우의 탱맑은 빛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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