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 무엇보다 사회제도 개혁과 인식 전환이 선결문제 아닐까요?


우울증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 아이들의 우울증은 어른이, 그들이 주무르는 사회가, 제도가, 인식의 틀이 만든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아이들 개인 문제로 치부합니다. 사회가, 제도가 얽어매는 족쇄를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리어 아이들을 기성 체제와 가치의 노예로 만들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어른들의 인식을 전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 탓만 하고 있습니다.


2010년 12월 8일 어느 일간신문 보도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만 15살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 실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1~4위에 올라 학업성취도가 최상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읽기 학습’에 대한 흥미도가 낮고 혼자 읽고 공부하는 능력이 다른 회원국 학생 평균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오이시디는 34개 회원국과 31개 비회원국의 만 15살 학생 약 47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9년 국제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2009) 보고서를 7일 공개했다. 우리나라에선 137개 고등학교와 20개 중학교 학생 5123명이 참가했다.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읽기 1~2위, 수학 1~2위, 과학 2~4위로 모두 최상위권이었다. 피사 결과는 통계 오차 등을 고려해 순위를 1~2위처럼 범위로 표시한다. 읽기와 수학의 평균점수는 각각 539점, 546점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는데, 특히 수학에선 ‘만년 1위’ 핀란드(541점)를 처음으로 앞질렀다. 과학(538점)은 핀란드(554점)·일본(539)에 뒤졌다.

평가에 참여한 65개국 전체를 비교한 결과에서도 우리 학생들은 읽기 2~4위, 수학 3~6위, 과학 4~7위를 기록해 최상위권이었다. 과학은 2006년 평가 때는 7~13위였으나 이번에 순위가 크게 올랐다. 전체 참여국 비교에서 순위가 약간씩 떨어진 것은 중국의 대도시인 상하이가 새로 평가에 참여해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피사는 오이시디 회원국 평가를 중심으로 하되, 비회원국은 경제협력 파트너 자격으로 도시 단위로 참여할 수 있다.

성적은 최상위권이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 흥미도는 여전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평가의 집중 분석 과목인 읽기 영역에서 흥미·즐거움 지수가 65개 나라 가운데 28위에 그쳤다. 또 읽기 성취도에 영향을 주는 학습전략 가운데 ‘암기 전략’은 오이시디 평균을 웃돌아 37위로 나타났지만, ‘통제 전략’(자기학습관리능력)은 최하위권인 58위를 기록해 남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평가에서도 우리나라는 집중 분석 과목이던 수학 성적이 상위권이었지만 흥미도와 학습동기에서 전체 41개 나라 가운데 각각 31위와 38위였고, 과학이 집중 분석 과목이었던 2006년 평가에서도 흥미도가 오이시디 평균을 밑돌아 단순 암기식 교육의 부정적인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후반 밑줄 그은 부분은 대개 생략된 채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의 보도 사실 자체가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점을 여지없이 폭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육이 단순암기식, 주입식이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은폐해야 할 만큼 부끄러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교육 제도, 그 제도를 뒷받침하는 지배집단의 전략, 그 전략의 노예로 살아가는 침묵하는 다수의 굴종이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무엇이든, 인간에게 의미를 부여해주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흥미를 느껴 스스로 하는 일에서 생겨납니다. 흥미를 느껴 스스로 하는 일은 인간을 경이로움에 열려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게 하는 가장 고귀하면서도 힘 있는 끌개는 바로 경이로움입니다. 이것을 박탈당한 사람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입니다. 바로 우리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그게 다름 아닌 우울증입니다.


해결의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들을 경이로움의 세계에 풀어놓아야만 합니다. 교육, 입시 제도를 총체적으로 혁파해야 합니다. 주입된 지식을 암기해서 성취하는 능력은 종당 자기 자신을 사악한 체계의 노예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걸 누가 할 수 있으며, 그래서 누가 해야 할까요? 


정치인들로 대표되는 이른바 국가에 맡길까요? 어림없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맡길까요? 물색없습니다. 그 경계에 선 존재, 바로 엄마입니다. 엄마들이 뭉쳐야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럼 엄마들이 어떻게 뭉칠 수 있을 까요? 이 또한 오직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바로 지금 내 아이의 심리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입니다. 내 아이가 우울증으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기서 바야흐로 경천동지할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엄마들! 그들의 현주소는 어딜까요? 책의 들머리 초등학생 이야기에서 보셨듯이, 아이들의 현실과 고통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해야 할 엄마들이 사실은 문제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 또한 그 어머니 개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려 두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어느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망치고 싶겠습니까. 그들 하나하나 물어보면 누군들 자기 자식 사랑한다고 대답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회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그게 자식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성가부장적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들조차 그 희생양이 되어 아이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비극의 자궁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어머니를 깨워야 합니다. 모성을 복원해야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과 손길로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면 우리 미래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 됨을 사무치게 각인하고 떨쳐 일어나 이 포악한 세상을 뒤집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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