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1) 약물치료, 문제없나요?


흔히들 말합니다. 우울증, 약만으로도 쉽게 나을 수 있다고. 그런가요? 물론 가벼운 경우 약으로 증상만 완화시켜도 일상생활로 금세 돌아갈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우울증이 이와 같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평생을 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은 어쩌면 최소한의 치료법일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떤 우울증 치료약을 먹으면 자살충동이 일어난다는 지적까지 있고 보면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미국의 어떤 임상심리학자가 쓴 <우울증 치료제(SSRI)가 청소년 자살 증가의 원인인가?>라는 글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미국 내 10대의 자살률이 최근 크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져 의학계와 심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통계인 2004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8%나 증가 했고 그전 15년간의 자살률 감소 추세를 크게 벗어났습니다. 10세에서 14세까지의 여자 어린이의 75.9%의 자살 증가율을 비롯해 모든 나이의 남녀 청소년들의 자살시도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는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급증하는 자살의 가장 유력한 이유 중 하나는 뜻밖에도 2004년 당시 미국 연방 정부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대표적인 우울증 치료제인 SSRI에 부착한, 복약 후에 자살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는 내용의 경고문입니다. 이 경고문은 청소년의 우울증 치료제 사용을 즉각 20% 이상 감소시켰으며 치료제가 필요할 때 약의 사용을 기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자리 잡히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의 치료제인 SSRI가 어떻게 해서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증상인 자살을 치료하기는커녕 증대시킨다고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경고문을 넣었을까요. 그것은 미국 식품의약국 자체에서 실행한 연구에서 이 약들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자살시도 비율을 2%에서 13%까지 증가시켰다는 결과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 결과에 상응해 그런 경고문을 넣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된 것은 환자가 우울증을 경험할 때 정말 심한 경우엔 자살을 할 여력이나 자살을 생각할 여유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우울증 치료제의 투여 시 갑자기 생기는 여력과 기운은 전에는 시도조차 못했던 자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줍니다. 그래서 많은 심리학계 권위자들은 우울증 치료제 투여 후의 많은 자살시도는 우울증 치료제의 본질적인 부작용이 아니라 환자에게 생기는 갑작스런 기운과 여유로 인한 현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번 짚고 넘어갈 것은 SSRI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우울증에 많은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프로작(Prozac)은 어린이들에게 65%의 약효가 입증됐고, 졸로프트(Zoloft)는 75%의 약효가 입증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심한 우울증을 경험해서 약을 처방해야 할 때 자살할 위험 때문에 약을 처방하지 않는 경우, 아직 심하지 않았던 우울증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자살의 위험이 오히려 증가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번 갑작스러운 청소년 자살 증가는 필요한 치료제를 자살의 위험을 의식해 기피한 것이 오히려 큰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우울증의 경우 약의 치료보다는 심리적인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증세를 일으키는 원인이 있을 경우 근본적인 원인을 인식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그 증세가 언제나 재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을 이용하지 않고 치료가 가능하다면 절대로 약을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약을 병행해야 치료가 가능할 때가 많습니다.(이하 생략)


무슨 의도에서 쓴 글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지니고 있는 기본 철학에 동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관계와 논리에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약을 먹고 자살을 하는 것이 약의 부작용이 아니고 오히려 약 효과로 나타난 여력과 기운 때문이라는 주장이 옳다면, 그 앞에서 경고문 때문에 약을 기피해서 자살률이 높아졌다는 해석과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약을 안 먹어서 여력과 기운이 생기지 않았는데 무슨 힘으로 자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말일까요? 약을 먹어서 자살하는 사람과 약을 안 먹어서 자살하는 사람이 같을 리 없는데 어떻게 이런 논리가 나왔을까요? 더군다나 바로 앞에서는 자살을 우울증에서 가장 무서운 증상이라고 했으면서도 약을 먹으면 증상이 완화되어 자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한다고 하니 이 또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혼란이 생긴 걸까요?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SSRI라는 약 하나의 작용 범주에 함몰되어 논의를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로토닌 재흡수를 억제하면 세로토닌 양이 늘어나 우울증 상태를 완화한다는 사실에만 집착했지 신경전달물질 상호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세로토닌은 도파민계열 모노아민 억제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나는 사람일 경우 세로토닌이 늘어나서 자살한 게 아니고 도파민이 억제되어 자살을 한 것입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편리한 대로 분리하는 논리는 아무래도 제약회사의 입김 같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SSRI의 효과이자 부작용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자살하는 사람은 본디 SSRI로 치료해서는 안 되는 환자였던 것입니다. 우울증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낳은 비극입니다. 제가 먼저 쓴 책(<안녕, 우울증>)에서 말씀드렸듯 우울증은 현재 적어도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분류를 할 수 있고 거기에 따라 치료를 달리해야 합니다. SSRI를 일단 줘 보는 식의 치료는 극히 위험합니다. 가령 도파민 부족으로 삶의 의미를 못 찾고 있는 사람에게 SSRI를 쓰면 자살을 권하는 꼴이 되는 것이지요. 거기다 대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로 에너지가 생겨 자살했다고 말하면 누가 듣더라도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쓰면 약에 분명히 완화 효과 있다는 거, 인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 교과서적 의학 수준에서 과연 제대로 약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제 임상의들이 적절한 진단 방식을 통해 우울증의 유형을 분류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식을 갖추고 거기에 맞추어 약을 체계적으로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한, 다른 안전장치 없는 “아니면 말고” 식의 약물 치료는 삼가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공-화학적으로 조제된 약물로 뇌신경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의 병을 고치겠다는 발상 자체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람은 뇌가 조종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의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인간 생명에 대한 예의를 지킬 의무가 있는데도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세 가지 구체적인 폐해 사실을 더해두기로 합니다. 우선, 거의 모든 정신과 양약은 칼슘과 마그네슘 효능을 탈취합니다. 두 물질 모두 사람의 정신 안정에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정신과 양약을 오래 복용하면 정신 안정이 무너진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됩니다.


둘째,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SSRI는 소화관을 망가뜨리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로토닌은 뇌에 2% 미만, 소화관에 98% 이상이 분포하기 때문입니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 효과가 소화관에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결국 과량의 세로토닌이 소화관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필연입니다. 더군다나 소화관은 이른바 “제2의 뇌”라고 말해질 만큼 정신 문제와 직결됩니다. 이 문제 또한 앞의 폐해와 똑같이 모순을 낳고 마는 것이지요.


셋째, 이는 양약 일반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거의 모든 양약은 우리 몸을 차게 합니다. 몸이 차다는 것은 한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매우 좋지 않은 사실입니다. 암을 비롯한 수많은 중병들이 낮은 체온과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런 일련의 문제를 놓고 생각한다면 양약 일변도로 우울증 치료에 접근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2) 아, 그럼, 한약은 어떤가요?


물론 한약도 약입니다. 약으로 마음의 병을 완벽하게 다스린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교만한 것이란 점에서는 양약과 다를 바 없이 대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약은 양약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우선 양약은 기본적으로 병이라는 적대적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그 기전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서양의학의 기본자세거든요. 우울증의 경우 앞에서 거론된 SSRI라는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그대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입니다. 부족한 세로토닌을 공급한다거나 세로토닌 신경계를 활성화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한약은 이와 달리 기본적으로 보충해주고 활성화한다는 개념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없는 보(補) 개념을 통해 생명의 자체 치유능력을 돕는 방법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양약과 같은 극단적인 부작용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약의 쌍방향조절 기능입니다. 양약과 달리 필요한 성분만 추출하거나 조작해서 쓰는 게 아니라 생명체인 식물 자체를 쓰기 때문에 식물의 생명 특성이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 땅에 뿌리 내리면 죽을 때까지 이동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쌍방향적 성품을 지니게 됩니다. 물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한약, 특히 여러 가지 약재를 조합해서 달이는 탕약은 사람의 생명 상태에 따라 유연하게 쌍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서양의학에서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대로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약은 SSRI처럼 재흡수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세로토닌 부족을 메우는 게 아니라 세로토닌 신경계를 활성화하고 세로토닌의 전구물질인 트립토판을 공급해주는 방식을 택합니다. 또한 일방적으로 이런 효과가 일어나 도파민 신경계를 과도하게 억제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쌍방향 작용을 합니다. 결국 약만으로 따졌을 때 한약이 양약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종합적인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약만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우울증을 잘 모르거나, 약을 과신하거나, 최악의 경우 그 둘 다거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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