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 우울증, 무엇이 다를까요?



(1) 분노, 공격성, 그리고 거부로 나타나지요.


제3장에서 인용했던 소녀의 글을 필요한 부분만 다시 보겠습니다.


.......집에만 오면 모든 게 짜증났고요. 자살시도도 했었습니다. 무서워서 중간에 그만뒀었지만 매우 여러 번 했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2,3학년 때 특히나 심하게 자살하고 싶어 했고요.......


그리고 옛날엔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 화가 나면 주체를 못하겠고 물건 던지고 싶고 뭔가 부러뜨려야 성에 차고........또 화도 너무 자주 납니다. 짜증나고 신경질 나고....... 엄마랑 사사건건 부딪히고요. 몇 마디 대답하면 엄청나게 뭐라고 하기 때문에 결국엔 엄마 역정 제가 다 받아주는데....... 이렇게 한번 싸우고 나면 갑자기 세상이 싫어지고 그냥 죽고만 싶고 어디론가 꺼지고 싶은 느낌입니다.......


이 소녀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청소년기 우울증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은 분노, 공격성입니다. 이는 성인 우울증의 무기력, 허무감과는 전혀 다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근거로 작용합니다. 저렇게 덤비고 못되게 구는 게 무슨 우울증이냐, 이런 반응을 낳게 하는 것이지요.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자살충동과 자살기도입니다. 이는 분노와 공격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충동과 시도일지라도 그것은 자기모독의 흉터, 자기부정의 길을 선명하게 남기는 일이므로 쉽게 다루어서는 안 될 문제입니다.


또 자기 자신의 독자적인 경계를 설정하고, 확인하는 일에 민감해져서 빠른 주기로 엄청난 감정의 격차를 드러내거나, 과시적 자해를 하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노와 공격성은 반사회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 확산되기도 합니다. 단순히 부모나 가족과 감정적으로 충돌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고 사회 규범이나 가치를 거부하고 거기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폭력, 전쟁, 정복 등에 관한 환상적인 생각이나 만화, 판타지 소설 등에 빠지는 것은 물론, 실제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절도, 폭주, 음주, 흡연, 본드 흡입, 문란한 성관계 등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이런 특징들은 청소년기의 생리적, 사회적 특성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청소년기는 매우 미묘한 경계시기입니다. 생각이나 몸은 어른으로 급격하게 성장하는데 실제로 그에 맞게 생리적, 사회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대부분 금지되거나 무시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그들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준(準) 인간쯤으로 여깁니다. 오직 완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 배우고 예비하는 일에만 매달리도록 묶어두려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언사,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참으로 질리도록 듣는 말입니다. 그러나 생리적으로든 사유능력으로든 이 무렵 아이들은 성인과 거의 다름없습니다. 오히려 생리적으로는 더 왕성합니다. 사유능력 면에서도 실제 시간이나 교육 기회의 차이에서 오는 전문적 지식과 연계된 것이 아닌 한 기본적인 부분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금지와 무시로 말미암은 괴리에서 오는 억눌린 감정이 이들 우울증의 고갱이입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를 것입니까. 문제는 특히 우리사회가 지니고 있는 강도 높은 부조리함입니다. 유교사회에서 식민지를 거쳐 군부독재를 오랜 세월 겪으면서 내면화된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지배논리가 너무나도 견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 현실. 이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우울증을 가파르게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대한 판단기준조차도 성인 중심이니 더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아이들은 다릅니다. 어른의 기준에서 그렇다, 아니다,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우울증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아이들을 더욱 절망하게 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의 우울증을 더 깊게 합니다. 윤리 이전에 감정이 있습니다. 청소년기 아이들, 특히 우울증에 걸린 아이들의 이른바 감정-뇌는 매우 팽대해져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윤리-뇌는 2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설혹 윤리적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윤리 규범을 들이대며 훈계하거나 때리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상황에서 윤리는 아이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른들만의 질서이고 규칙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끼리만 노는 상에 아이들이 왜 들러리를 서야 하는지 묻는 것은 그냥 철없는 질문이 아니고 준엄한 질정입니다. 그대들이 어른 맞는가, 묻는 호된 채찍입니다. 악(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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