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에 걸쳐 <중용>을 읽었습니다. 본디 이 중용 읽기는 2008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제 딸아이와 함께 소박하게 시작한 것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 수준인 아이 한자 쓰기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낱말풀이, 문장의 기본 뜻,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간결한 메시지 정도로 공부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뚜렷하게 깨닫게 된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오해하건 간에, 이 고대 텍스트는 정치적인 지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촛불정국이 형성되어 온 나라가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하여 원칙적이나마 사회정치적 지평에서 <중용>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매우 강하게, 직설적으로 현실 정치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게시했습니다.  

 

사단이 안 생길 리 없지요. 결국 현실 정치 문제를 언급한 부분 모두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내용이 이상해졌지요. 그것을 방치해두었다가 작년 10월부터 다시 들여다보면서 고쳐 쓰고, 현실 정치에 대한 언급을 그나마 부드럽고, 모호하게 해서 복원시켰습니다.    

 

게으른 탓도 있지만 각인된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자기검열의 힘, 대단히 무서운 것이더군요. 하여 뒤로 갈수록 미루어지면서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러버렸습니다. 이제 그 동안 해 온 독서를 마무리 지으려 합니다.    

 

특별하게 더 강조할 무엇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용이 그러하듯 우리의 끝맺음도 평범할 것입니다. 중용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평등하게 서로 소통함으로써 다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일상적 실천입니다. 우리의 중용이 특별한 경지에 있기 때문에 시대의 어두움을 걷어내는 함성이 되는 게 아닙니다. 저 어둠이 우리의 소통과 공감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순을 꿈꾸는 게 아닙니다. 저들이 한사코 우리 위에 군림하고자 해서, 그리는 못한다, 바로잡을 따름입니다. 딱, 그뿐입니다.  

 

부디 이 작은 독서가 벗들에게 대승적 자아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일어난 자각이 우리사회의 질곡을 걷어내는 데 보탬이 된다면 <중용>은 우리의 <중용>일 것입니다. 물론 바로 그게 중용의 도일 테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