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아픔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의 시집
프리모 레비 지음, 이산하 엮음 / 노마드북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1. <<Mandela's Way>>라는 책에 이런 내용의 말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행한 선만큼 선하지 않다."   

이 말을 저는 이렇게 바꿉니다.   

"어떤 시인도 자신이 쓴 시만큼 아름답지 않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적어도 프리모 레비만큼은 이 진실에 날카로운 틈을 냅니다.  

2. 시집을 펴기 전!
표지에 나온 그의 사진을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철저한 눈빛, 뭔가?
얼굴과 시선이 절묘하게 어긋나 있고,
그 눈은 응시와 응시를 벗어난 가녘에 칼 같은 중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가 이런 시선을 유지한 채 죽음으로 걸어들어 갔을 것이라고 느낍니다. 

편역자는 그의 허무주의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그는 허무주의자로 죽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는초월하지도 않습니다.
뭇 시인의 운명인, 저 초월을,
그는끝내 거부합니다.
그의 시, 그의 삶은 단 한 순간도 인간의 지평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니, 그는 내려갑니다! 

<수레바퀴>의 마지막 네 줄. 

이젠 내려가야 할 때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 세월의 그늘 속에
몸을 숨긴 채
조용히 침묵해야 할 시간이다. 

그렇습니다.  
그 침묵의 절창, <석양>을 보십시오. 

그 어떤 것도 억지로 꿈꾸지 않았고 
그 어떤 것에도 애써 매달리지 않았네. 
거센 폭풍의 바다를 헤치고 나와 
항구의 선술집 난로 옆에 앉아 
홀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여라. 

축제 뒤의 사그라져가는 불씨처럼
저물어가는 강가의 모래알처럼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은 채 
이마의 땀방울을 닦으며
조용히 길모퉁이에 앉아 쉬고 있는
그런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여라.
욕망도 집착도 모두 내려놓고
말없이 저무는 석양만 응시하네. 


그 응시하는 눈은 웅숭깊은 질문으로 젖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이 질문으로 그는 죽었습니다.
이 죽음으로 그가 택한 것은 허무 아닌 침묵의 응시입니다.  

글로 할 수 없는 증언을 위해 몸을 벗어난 것입니다. 

3. <게달레 대장>에 세 번 반복되는 후렴이자 마지막 연,
이를 그대 가슴에 안기면서
프리모 레비를 간곡히 권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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