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20장 네 번째 문단입니다.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知斯三者 則知所以修身 知所以修身 則知所以治人 知所以治人 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 凡爲天下國家 有九經 曰 修身也 尊賢也 親親也 敬大臣也 體群臣也 子庶民也 來百工也 柔遠人也 懷諸候也. 修身則道立 尊賢則不惑 親親則諸父昆弟不怨 敬大臣則不眩 體群臣則士之報禮重 子庶民則百姓勸 來百工則財用足 柔遠人則四方歸之 懷諸侯則天下畏之. 齊明盛服 非禮不動 所以修身也 去讒遠色 賤貨而貴德 所以勸賢也 尊其位 重其祿 同其好惡 所以勸親親也 官盛任使 所以勸大臣也 忠信重祿 所以勸士也 時使薄斂 所以勸百姓也 日省月試 餼禀(廩)稱事 所以勸百工也 送往迎來 嘉善而矜不能 所以柔遠人也 繼絶世 擧廢國 治亂持危 朝聘以時 厚往而薄來 所以懷諸侯也. 凡爲天下國家有九經 所以行之者一也.
공자는 말씀하셨다. "배우기를 좋아함은 지(知)에 가깝고 실천을 힘씀은 인(仁)에 가까우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勇)에 가깝다." 이 세 가지를 알면 몸을 닦는 방법을 알며, 몸을 닦는 방법을 알면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며,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면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안다.
무릇 천하국가를 다스림에 아홉 가지 원칙이 있으니 몸을 닦음과, 어진 사람을 존경하는 것과, 친족과 하나가 되는 것과, 대신을 공경하는 것과, 여러 신하를 내 몸처럼 여기는 것과, 서민들을 자식처럼 여기는 것과, 백공들을 오게 하는 것과, 먼데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것과, 제후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을 말한다.
몸을 닦으면 곧 방법이 생기고, 어진 사람을 존경하면 미혹되지 않으며, 친족과 하나가 되면 제부(諸父)와 형제가 원망하지 않고, 대신을 공경하면 현혹되지 않으며, 여러 신하들을 내 몸처럼 여기면 선비들의 보례(報禮)가 중후하게 되고, 서민들을 자식처럼 여기면 백성들이 분발하게 되며, 백공들을 오게 하면 재물을 쓰는 것이 풍족해지고, 먼데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 사방 사람들이 돌아오며, 제후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면 천하가 두려워하게 된다.
재계하고 깨끗이 하며 정복을 갖추어 입고서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몸을 닦는 수단이고, 아첨하는 자를 제거하고 여색(女色)을 멀리하며 재물을 천하게 생각하고 덕(德)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현자(賢者)를 권면하는 수단이며, 그 지위를 높이고 그 녹(祿)을 무겁게 해주며 그 호오(好惡)를 같이 하는 것은 친족과 하나 됨을 권면하는 수단이고, 관직의 수가 많아져 지휘권을 맡기는 것은 대신을 권면하는 수단이며, 충심(忠心)으로 대하고 믿으며 녹을 많이 주는 것은 사(士)를 권면하는 수단이고, 부역을 때맞게 하고 세금 걷는 것을 줄이는 것은 백성을 권면하는 수단이며, 날로 살피고 달로 시험하여 보수를 일의 능력에 맞게 하는 것은 백공을 권면하는 수단이며, 가는 이를 보내고 오는 이를 맞이하며 착한 것을 칭찬하고 잘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먼데 있는 사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수단이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고 망하는 나라를 일으켜주며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고 위태로운 것을 붙잡아주며 조회[朝]와 초빙[聘]을 때에 맞게 하며, 보내는 것을 많이 하고 받는 것을 적게 하는 것은 제후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수단이다. 무릇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데에는 아홉 가지 원칙이 있으나 그것을 행하는 수단은 하나이다.
2. 다섯 가지의 보편적인 도와 세 가지 보편적인 덕을 거쳐 아홉 가지 다스림의 칙을 말하는 데까지 왔습니다. 길고 상세한 언급이 있으나 일일이 풀어 설명할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봉건시대 최상위 정치 지도자를 대상으로 강론한 듯한 느낌을 주는 내용이라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성질의 것으로 판단됩니다.
오히려 강조할 것은 수신(修身)으로 풀어서 수신(修身)으로 매듭지은 사실입니다.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일 또한 다함없이 실천의 결기를 닦는 평범한 일에서 비롯한다는 내용입니다. 부단히 깨어 있어 찰나 찰나를 챙기는 닦음, 그 미세한 통찰을 소홀히 하고서는 천하와 국가의 다스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 사회의 통치자 위치에 서는 꿈을 지닌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사적 실천에서 떳떳함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회의 어두움을 틈타 온갖 부조리에 발을 담그며 이득을 누려 왔다면 통치자 자리에 앉으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통치자 자리조차 이득의 하나로 여기는 판국이라 이런 말도 우습습니다만 사적 이익 추구 능력을 공적 통치 능력과 혼동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런 혼동의 후폭풍에 휘말리고 있습니다. 새삼 수신(修身)이란 말의 향기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