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7장 본문입니다.  

 

子曰 人皆曰予知 驅而納諸網獲陷穽之中而莫之知抗也, 人皆曰予知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   

 

(이기동 역해 본문은 網이 아니라 그물 망 머리 아래 옛 고를 쓴 그물이란 뜻의 '고'이며, 抗이 아니라 避에서 책받침이 빠진 '벽'(뜻이 避와 같아 '피'로 읽어야 한다고 함)입니다. 본문 비평은 능력 밖이고 뜻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번역은 이기동을 따릅니다.)    

 

공자는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다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몰아서 그물이나 덫이나 함정에 넣어도 피할 줄을 알지 못하며, 사람들은 다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지만 중용을 골라서 한 달도 지킬 수 없다."  

 

2.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자의 지혜는 앞에서 말한 小知, 즉 내남을 구별하여 세상을 나누어야 직성이 풀리는 강자, 승자 부류의 기능적 지식을 뜻합니다. 권력, 돈, 전문지식을 독점하는 데 필요한 극단적 프로세스로 작동하는 지식이지요. 대부분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 획득한 것입니다. 당연히 그 삶 또한 불공정한 틀 속에서 영위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굳게 믿습니다. 이를테면 확신범인 셈입니다.  

 

그들의 확신은 너무나 완벽합니다. 그래서 그물, 덫, 함정으로 몰리는 일조차 강함과 이김의 기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이런 망상은 권력, 돈, 전문지식을 자신의 인격과 동일시하는 데서 극치를 이룹니다. 힘없고 돈 없고 전문지식 없으면 사람의 격도 없다고 생각하므로 그런 사람들을 "근본 없는 것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렴풋이 이해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권력, 돈, 전문지식을 누릴 때 한껏 고양되는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세상이 '돈짝' 만하게 보이고,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고.......  

 

하지만 그 끝은 파멸입니다. 그 파멸은 소통을 거절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형벌입니다. 생명의 영속성은 더불어 살 때만, 관통과 흡수가 일어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 것에 의지해 "멀쩡한 사람 산 채로 포 뜨는"(인기 있었던 주말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를 취한 것입니다.) 짓의 대가는 그물이고 덫이고 함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이 파멸을 면한 증거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생명의 진수를 몰랐으니 돌이킬 수 없는 형벌에 처해진 것이지요.  자신들이 누리는 그것만이 최고, 최상이라 착각한 대가로 존재의 숭고함에서 끝내 "왕따" 당한 것입니다. 대롱으로 본 하늘 밖에 흐드러진 별들이 얼마나 찬란한지 "지옥"에 가서 확인하고 나서야 땅을 치게 될 것입니다.  

 

3. 어찌어찌 중용을 고르기는 했는데 한 달도 못 지키는 주제에 스스로 지혜롭다고 한답니다. 아, 물론 중용이 어렵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지혜롭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더 큰 무게를 지닙니다.  

 

사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른다(擇)"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용은 선택입니다. 선택이란 말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선택하지 않은 무엇이 있다는 사실이지요. 중용을 선택한 군자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길게 얘기할 것 없겠지요.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면서 결국은 자신을 그물, 덫, 함정으로 몰아넣는 자들이 사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소통을 거절하는 삶, 독식하는 삶, 군림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하지 않은 것을 견디는 일이 중용이며, 길이 견디는 사람이 군자입니다.  

 

군자는 찰나찰나 결단하는 용기를 요구 받습니다. 중용은 군자에게 어느 순간 주어진 자격증이 결코 아닙니다. 군자는 중용을 "지켜내야(守)" 이루어지는 길고 긴 과정 자체입니다. 중용 없이 군자 없는 것이지 군자 없이 중용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한 삶을 지키는 만큼이 바로 그 사람됨입니다. 

 

4. 小知의 끝이 파멸이란 사실과 선택한 大知를 지키는 것, 선택하지 않은 바를 견디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붙여놓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전자의 현실적 힘이 후자의 것을 늘 제압해 왔다는  우리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권력, 돈, 전문지식의 매혹에서 자유로운 자 그 누구이겠습니까? 얼마나 살겠다고 소통을 들먹이며, 생명의 연대성을 운위하느냐, 다 부질없다,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그 누구이겠습니까?  

 

그럴수록 중용은 가벼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또 그럴수록 중용을 관념 세계로 밀어내는 경향은 짙어지고.......그렇습니다. 이쯤에서  공자의 인간적 고뇌가 물결이 되어 독자의 가슴에 전달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칼날 같은 답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지표 삼아 내 삶을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그 선택을 "지킬" 것인가? 어떻게 선택하지 않은 것을 "견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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