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계곡의 나우시카 7 - 완결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1. 지금 고등학생인 제 딸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만화에 깊은 조예가 있는 후배의 소개로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사주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항께 읽었습니다. 나중엔 영화도 함께 보았지요. 딸아이도 저도, 물론 각기 다른 감각에서지만, 많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엊그제 우연히 딸아이의 서가에 여전히 꽂혀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제 인생의 오랜 화두였던 이른바 "대칭성/양면성의 사유"를 거의 마무리하고 제 의료적 실천에까지 결합하는 crucial한 경험을 했으므로, 아무래도 책을 읽는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읽을 때와는 달리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앞뒤 문맥을 살피면서, 아, 하긴, 군데군데 재미에 이끌려 쏜살같이 나아가기도 했지만^^, 천천히 깊이 읽게 되더군요. 사실, 사회 상식으로 보아 이 나이에 이른 어른이 어찌 됐든 (아이들이 읽는) 만화책을 붙들고 음미 씩이나 하면서 읽는다는 게 희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어디에도 깃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면.......  

2. 인간의 절제할 수 없는 탐욕이 빚어낸 폐허, 그럼에도 거기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또 다시, 아니, 여전히 그 무절제한 탐욕의 스펙트럼으로 발산되어 폐허의 폐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고, 그 길에서 나우시카라는 어린 소녀가 불가사의한 힘으로 생명의 본령을 지키는 흐름을 이끌어낸다, 뭐, 이런 이야기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흥미진진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적절한 문맥에서 적절한 깊이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깨달음이 대가란 다만 재주만 가지고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증명해줍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심취하면서 책을 읽는구나, 하면서 문득 딸아이 기색을 살폈더니, 예상대로, 아빠, 그렇게나 재밌수?, 이런 질문이 두 눈에 써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밖에서 저녁 식사하고 걸어 집으로 들어올 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다시 읽으니 참으로 예사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떤 측면에서? 

-흠, 지난 번 아빠가 너희 학교 가서 학부모 특강할 때 말한 것 기억나지? 세계는 대칭성으로 되어 있다, 생각도 그리 해야 한다, 그게 왜 논리와 심리에 중요하냐, 뭐 그런 얘기 말야. 

-응. 근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다시 읽었더니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 진실에 이미 정통해 있더라구. 그래서 과연 고수가 맞다, 무릎을 쳤다니까. 

-흠. 그래? 어떻게? 

제가 딸아이에게 전해준 내용은 이러합니다. 마지막 슈와의 무덤에서 순수 빛으로 세상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또 다른 탐욕을 지닌 "기술자" 신(神)과 대면할 때의 대화. 

-너희는 위험한 어둠이다. 생명은 빛이야! 

-아니, 생명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다!(제7권 201쪽)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지요. 이에 대해, 방금, 나우시카 때문에 대오각성한 토르메키아 왕이 게송을 읊어 화답합니다. 

-마음에 들었어. 너는 파괴와 자비의 혼돈이다!(제7권 212쪽) 

3. 저는 이 대목에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한 부분을 떠올립니다. 세번째 장, 아연 중에 나오지요. 

".......부드럽고 예민하며 산(酸)에 고분고분해서 한 입에 먹히는 아연도 불순물 없이 아주 순수한 경우에는 행동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럴 경우 아연은 어떤 결합도 완강히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충돌하는 두 가지 철학적 결론을 일끌어낼 수 있다. 악에서 지켜주는 보호막 같은 순수함에 대한 찬미와, 변화를 일으켜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불순함에 대한 찬미가 그 둘이다. 나는 메스꺼울 정도로 도덕주의적인 첫째 것을 버리고, 내 맘에 드는 둘째 것에 대해 생각하느라 꾸물거리고 있었다. 바퀴가 돌아가고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불순물 중의 불순물이 필요하다. 잘 알고 있듯이, 땅도 무엇을 키워내려면 그래야 한다. 불일치, 다양성, 소금과 겨자가 있어야 한다. 파시즘은 이러한 것들을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하기까지 한다....... 얼룩 하나 없는 미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런 게 존재한다면 정말 혐오스러울 것이다......."(51-52쪽)       

만화가가 그려낸 세계의 실상이나, 화학자이자 문학가가 깨달은 세계의 실상이나, 醫者가 알아차린 세계의 실상이나, 결국, 참으로 그러하다면, 일치하는 게 이치겠지요. 대칭을 이루는 모순이 다양한 역설을 빚어내는 것이 바로 이 세계의 장관이며 파노라마, 특히 생명입니다. 타인을, 어둠을 악이라 몰아세우고, 자신만의, 빛만의 제국을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무리들이 유난히 준동하고 있는 우리사회 현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 때, 저들에게 이 만화를 권하면 사탄이라  저주하겠지요?^^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의 소녀 나우시카는 저들을 "그림자"(제7권 196쪽)라 했습니다. 과연 그렇지 않나요?   

4. 딸아이가 제 말을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그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그 아이 삶의 몫 만큼 깨달아 나아가겠지요. 이 아비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다시 읽듯 그 아이도 다시 읽으며 자신과 사회의 그림자가 아닌, 참 주체로 살아가기를 빌면서, 나우시카의 얼굴에는 제 딸아이 얼굴을, 프리모 레비 얼굴에는 제 얼굴을 겹쳐서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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