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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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수아비 춤>의 조정래 작가와 <강남몽>의 황석영 작가는 모두 1943년생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정래 작가가 훨씬 윗 연배라는 느낌을 줍니다. 사회적 행동 양식이나 문학 스타일의 차이와 관련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 혼자 생각입니다만.  

아주 사소한 이야기지만 <허수아비 춤>과 <강남몽>의 책 느낌도 그런 차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전자가 더 길어 보이지요. 두툼하거든요. 그러나 책과 활자의  크기, 활자 간격, 행 간격 등을 따져보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차이는 출판사가 만들어낸 것이므로 우연일 테지요. 그러나 전자가 날카로울 때라도 날렵하지는 않은 것처럼 후자는 유장할 때라도 중후하지는 않으므로 단순한 우연이라고 넘겨버릴 일만은 아닙니다. 

게다가 조정래, 하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대뜸 떠올리게 되니 사유 양식 자체가 어째 diachronic할 것 같고, 황석영, 하면 <장길산>이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어째 사유 양식 자체가 synchronic할 것 같지요. 허나 여기선 <허수아비 춤>이 오히려 synchronic하고 <강남몽>이 diachronic합니다. 어쨌거나 두 책을 연거푸, 또는 묶어 읽으면 대한민국 역사적 맥락과 사회구조적 지평의 집장태(集藏態)를 단박에 그려 볼 수 있습니다.  

2. <강남몽>은 박선녀, 그리고 길든 짧든, 깊든 얕든,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각각 어떤 경로를 밟아 강남으로 흘러들어 왔는지 날렵하면서도 유장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앞잡이로 시작해 군정과 독재정권을 거치며 토실한 재력가로 자리를 잡아가는 대성백화점 김진의 이야기가 그 중 압권인데요. 그의 개인사가 우리나라 근현대정치사, 특히 지배층형성사를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허수아비 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우울감이 엄습하는 통에 몇 번 책을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뭐, 그리 투철한 민족주의자나  애국자는 아니지만, 민주투사는 더욱 못되지만, 식민지 논리가 갈수록 공고하게 사회 전반을 제압해 가는 과정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일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던 탓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준동하는 김진류의 사람들, 그들이 곧 <허수아비 춤>의 주인공들이므로, 감정의 범람을 억제하기 힘든 독서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김진을 둘러싼 김창수, 이희철, 그리고 그들의 동선과 맞물리는 사건에 따라 명멸하는 다양한 어둠의 종족들, 심지어 박정희, 김종필, 뭐 이런 대한민국 현대사를 복마전으로 만든 邪派 고수들까지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격정의 불을 지피는 저 '황구라'의 입담은, 그러나, 두 점 사이에 직선을 긋듯 날렵하게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을 듯한 대목에서 속절없는 한 문장으로 긑이 나기도 하지요. 때로는 여백미학으로 느껴지고, 때로는 뒷심이 달리나,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강남을 말할 때, 사실, 부동산 투기와 '룸쌀롱' 낀 조폭 빼면 임현식 빠진 <허준>이고  이희도 빠진 <동이>지요. 뭔, 조폭 얘기가 이리도 길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신동아 쪽에서 표절 시비를 걸어와 좀 시끄러워진 모양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지하(地下)적' 본질을 가진 시공간으로서 강남을 일으키고 기르는 데 정치가 기여하는 바는 가히 전지전능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윤무혁의 <강남몽>은 윤성훈의 <허수아비 춤>과 다릅니다. 진실이 달라서가 아니라 어디를 돋을새김 하느냐, 하는 문제겠지요. 

3.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붙잡는 두 여인, 박선녀, 임정아. 비슷하고도 다릅니다. 각자의 꿈을 지니고 변두리에서 흘러들어와  강남의 '바벨탑' 대성백화점, 그것도 그 붕괴현장, 생사를 넘나드는 경계에서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전자는 이미 강남 사모님이고 후자는 아직 풋나기 점원입니다. 전자는 끝내 죽었고 후자는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아마도 이 소설에서 작가가 가장 명징한 마음결로 펜끝을 움직였을 대목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이 또한, 저 혼자 생각입니다만.  

"....... 

 -앞으로 꼭 하구 싶은 게 뭐야?  

 -돈 벌어서 내 동생 전동휠체어 사줄 거예요. 

 -그게 비싼가? 

 -엄청 비싸죠. 집두 이사가야 해요. 평지에다 공원 근처에 이사가면 순아를 데리고 나갈 수도 있고....... 

 -그래. 그거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박선녀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임정아는 머릿속으로 그리던 그림들을 지워버리고 말을 끊었다. 

 -나 재력이 있는 사람야.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박선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임정아가 천천히 말했다.  

 -내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그러구 집두요. 저는 임시직인데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서 올라와서 여태껏 일만 죽도록 하구두 산동네를 못벗어났지요. 

 -그러니까 앞으론 잘살아야지. 

 -그렇지만....... 

 정아는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지 마세요."(337-338쪽) 

이 대목에 이르러 허리를 곧추 세우고 생각을 맑게 하면, 강남으로 흘러들어온 모든 사람들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임정아, 그리고 그 외. 오직 임정아만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내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우리의 뼈에 대고 긋는 비수 소리 같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을 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지닌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 아니 살아 남아야한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없는 삶의 자세를 지닌 사람 (모두를 상징하는) 박선녀는 살아 남지 못한다, 아니 살아 남지 못해야 한다. 그게 작가의 음성 아닐까요.  

4. 오년 가까이 환우들과 고락을 함께한 제 일터가, 하필 옛 삼풍백화점 자리 발치에 있습니다. 수없이 그 앞을 오가면서 묻지 않았던 질문인데 <강남몽>을 내려놓으며 문득 던져 봅니다. 

"나는 과연 임정아처럼 이 서초동에 들어선 것일까?" 

저는 곧 이 서초동을 떠납니다. 다시 스스로 묻습니다. 

"너는 죽어서 떠나는가, 살아서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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