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브레인 - 행복.사랑.지혜를 계발하는 뇌과학
릭 핸슨 & 리처드 멘디우스 지음, 장현갑.장주영 옮김 / 불광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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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점가를 장기간 제압하고 있는 자기계발/치유 서적이나 실용 심리학 서적의 양대 특징으로 뇌과학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과 종교, 특히 불교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양인 저자들이 그 동안 기독교적 영향 혹은 반영향이란 주류에서 벗어나 불교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됩니다. 

뇌과학은 이미 21세기를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중대 화두인 것이 사실입니다. 정신 관련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기반지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이런 위치를 점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더듬어 보면 달라이 라마를 상징적 축으로 하는 불교계가 미친 영향을 빼놓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티벳 불교만이 아니지요. 이른바 초기불교 사상과 수행 또한 그 영향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2. <붓다 브레인>이란 책은 그 제목만으로도 어떤 틀에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쓰여진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세부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밝힌 다음 그것을 넘어서 행복, 사랑, 지혜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지만 쓰윽쓰윽 읽는대로 손에 그 졸가리가 잡히는 유형의 책이 아닙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다소 산만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장한 흐름이 포착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고통의 연원을 밝힐 때 (저자들이 이 용어를 쓴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삼특상(三特相)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스스로 외부 세계와 차단하기 위해 연결되어 있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 할 때.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법을 따라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연결의 네트워크를 완전하게 떠난 자아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여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합니다. 그럼에도 이 법에 저항하여 자아에 집착할 때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2) 내부 항상성을 좁은 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안정시키려 할 때.  

삼라만상은 모두 변합니다. 불변하는 실체, 영원한 자성(自性)은 없습니다. 모든 운동은 시작하면 끝이 있습니다. 하여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그럼에도 이 흐름에 저항하여 특정 상태를 고착시키려 할 때 고통이 생기는 것입니다.  

(3) 기회를 얻거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부질없는 쾌락에 탐닉하여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외면할 때.  

생명인 한 고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무상이고 무아인 이치를 거슬러 기회를 추구하나 완전한 성취도, 만족도 불가능하며 그 과정에서 무수히 다가오는 위협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일체개고(一切皆苦)입니다. 그럼에도 한사코 고통을 피하려 할 때 구체적 고통이 생겨납니다. 즉 우리의 경험적 고통은 고통 자체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발생합니다. 

제법무아는 진실을 synchronic한 측면에서 파악한 것입니다. 제행무상은 진실을 diachronic한 측면에서 파악한 것입니다. 일체개고는 두 진실이 맞물리는 시공간에서 파악한 것입니다.  

저자들이 이런 틀 또는 흐름을 책 전반에 적용하여 내용을 펼쳐 나아갔더라면 독자들이 훨씬 더 삽상한 기분으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행복, 사랑, 지혜라는 병렬적 주제가 느닷없이(?) 도입되면서 저자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일단 '헤쳐모여'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헤치기는 했는데 다시 모이는 힘이 모자라 어수선한 분위기가 끝내 수습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3. 아쉬운 것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우선, 뇌의 특정 영역, 신경전달물질의 작용 상태가 어떻게 마음을 일으키고 왜곡하는가, 설명하면서, 그럼 어떻게 그 특정 영역과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조절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맞춤한 구체적 답변이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뇌과학적 근거와 그에 따른 실천이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부분 부분 연결시키고는 있지만 대부분 명상이나 그 연장선에 있는 수행에 맡겨진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영양학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한계를 증명해줍니다.  

둘째, 자율신경, 특히 교감신경(SNS)과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A)과 그것에 길항하는 부교감신경(PNS)의 중요성이 도처에 언급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브레인' 문제가 아닙니다. 뇌, 즉 중추신경의 조절 대상이긴 하지만 분명히 독자적 신경 시스템입니다.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문제가 뇌 조절 문제와 단도직입으로 맞물릴 수는 없지요.  

마지막으로, 붓다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통속한 긍정주의를 불식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경험을 억누르지 말라는 것이 처방이다. 부정적인 경험이 일어났다면 일어난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경험을 잡아두어서 영원히 우리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108쪽)

마지막 문장은 아무리 보아도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하기엔 이상하지요. 그뿐 아니라, 부정적인 경험을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면 그러면 그 처리를 어찌 하라는 것인지 말하지 않은 채 바로 긍정적 경험의 처리로 넘어간 성급함도 붓다와 맞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서 평정심을 그토록 강조한 태도와도 조화되지 않습니다. 뇌과학에서는 몰라도 붓다의 가르침 부분에선 아직도 요체를 파악하지 못한 느낌이 듭니다. 

4.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이 책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설혹 앞뒤가 안 맞는다 해도 그게 뭐 그리 대수랄 수 없는 측면도 있지요. 본디 세계가 그러니까 말입니다. 자기연민, 부교감신경 자극 방법, 강인함 느끼기 훈련 방법 등 곳곳에 참신한 지식과 관점이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가령, 기저휴식 상태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진화 유형이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으면 망상체에 내적 되먹임을 제공해주어 각성 상태를 강화한다, 입술에 부교감신경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므로 입술을 만져주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처음 한 번 읽고 실망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뭔 얘기를 하긴 많이 했는데 도무지 남는 게 없다, 이런 느낌 때문일 테지요. 하지만 잠시 두었다가 찬찬히 다시 읽으시면 입 안에서 작은 과일이 톡톡 터지면서 단 맛이 튀기는 상큼함을 여러 번 느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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