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6
송기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송기원과의 만남은 문학 작품이 아닌(?) 그의 책 <뒷골목 기행>을 통해서였습니다. 말하자면 그 책 이전에 그의 시나 소설을 만난 것은 전혀 다른 체험이었던 셈이지요. 지금은 잊혀 진 책이지만 그 무렵 저는 그 책을 주위 사람들에게 열심히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 책 이후 송기원에 대한 관심은 깊은 차원으로 나아갔습니다. 

<뒷골목 기행>은 그야말로 뒷골목을 몸으로 겪은 아야기를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몇 개의 에피소드가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지요. 목포 '히빠리마찌' 늙은 창녀 이야기, 부산 사창가로 흘러든 여대생 이야기 등. 송기원의 삶과 문학은, 인생여정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지만, 아니 에르노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투사였던 그가 청산거사에게 선도 수련을 배우고 <청산>이란 소설을 내자 많은 사람들이 뭐라 했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 같습니다. 그리고 인도, 티벳 여행, 수련으로 그의 정수리 부분이 융기되어 모자를 쓰고 다녔던 이야기, <인도로 간 예수>란 소설.......문학과 삶이 한 몸으로 엉켜 뒹구는 연인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마지막 시집이라 선언한 <저녁>. 한달음에 읽고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한달음에 읽기를 거듭합니다. 이런 우문이 맴돕니다. 그는 왜 이런 시를 썼을까? 사실, 그가 썼다기보다 그에게 시들이 내려왔다고 해야할 테지만. 그가 책 머리에 '죽음을 힘들어하는 너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하니까 선뜻 '아, 그런 책이구나!'하기 쉽지만 제 느낌은 좀 다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라는 위로만도 아니고 죽음 자체마저 넘어서라는 초탈만도 아니고 생사를 가로지르는 무애자재만도 아닙니다. 그에게는 숙명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지니는 질펀한, 그래서 애잔한, 더욱 황홀한 美感 또는 味感이 있습니다. 그곳으로 그는 언제나 돌아옵니다.  

유일한 산문시인 장다리』가 그 회귀를 노래하는 절창입니다. 

 한달 내내 장다리만 바라본 적이 있다........젊은 주인 아낙네가 장다리 텃밭에서 하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장다리 꽃대 아래 시들어서 누렇게 시래기가 된 이파리만을 따주는 것이었다. 단 한 잎이라도 생생한 잎은 건드리지 않은 채 시든 이파리만 따는 주인아낙네의 행동이 나에게는 무슨 종교적인 의례처럼 경건하여서, 이를테면 장다리의 삶은 건들지 않고 죽음만 치워주는 무슨 장례식 같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좀 더 나에게서 멀리 벗어나기 위해서 앉으나 서나 잠이 들거나 잠이 깨거나 해종일 형이상학적인 생각들에 몰두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장다리의 장례식을 치르는 주인아낙네가 나에게는 히말라야에만 산다는 무슨 영적인 스승으로까지 여여졌다. 내가 숙소를 떠난 것은 장다리 장례식의 비밀을 알고 난 후였다. 해마다 8월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이듬해 5월 말에야 눈이 녹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그렇듯 춥고 긴 극빈의 겨우살이에 필요한 시래기를 한 잎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서 모든 푸성귀를 키울 수 있는 한껏 장다리로 키운 것이었다.  장다리 장례식의 비밀을 알게 되자 한 달 동안 속절없이 황홀한 호사를 누렸던 내 눈만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바보가 된 내 눈에는 아직도 활짝활짝 화려하게 피어 있는 꽃들이 어쩐지 장다리의 눈물들이 활짝활짝 매달린 것 같았다. 

이를 산문시 형태로  빚은 것 또한 그의 생명감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본디 우리네 보통 사람의 삶이란 산문적이 아니던가요. 그가 <저녁>을  마지막 시집이라 한 것, 그 마지막 시집의 정수리에 이 산문시를 가만이 놓아둔 것, 모두가 그의 美感 또는 味感이 작동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모두 6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부의 마지막 시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다. 적어도 '죽음을 힘들어하는 너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한 뜻에 직접 머리 조아린 시들은 아닙니다. 아니 어쩌면 죽음의 시들이 뛰노는 마당을 바라보며 씽긋 웃고 삶의 애틋함을 챙기는 엄마 같은 시들이라고나 할까요. 특히 앞에 인용한 제4부의 끝시장다리, 제2부의 끝시 『맨발』, 제6부의 끝 시 『밤바람 소리 세 편은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좋은 스승인 모리 슈워츠의 마지막 메시지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살아가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죽는 법을 알게 됩니다. 죽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됩니다.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언제라도 죽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송기원은 자기 인생의 깊은 저녁 무렵, 죽음을 말함으로써  밤으로 가는 삶의 여정을 더욱 살갑게 더욱 진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려놓을수록 무거워지는, 애착할수록 가벼워지는 삶의 속살을 그 누구보다 파란만장하게 겪은 그이기에 말입니다. 마지막 시 마지막 부분이 귓전에서 밤바람처럼 웅웅거립니다. 

"아득한 곳에서 홀로된 그대가 듣는 밤바람 소리 속에는 어머니와 누님을 부둥켜안은 내 목소리도 함께 섞여 있을는지요."  

아득한 곳에서 홀로된 그가 듣는 밤바람 소리 속에 네 살 이후 먼 타인이 된 어머니를 부둥켜안은 제 목소리도 함께 섞여 있을까요? 제가 이 <저녁>을 남다르게 읽는 까닭이 바로 이 질문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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