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황진이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황진이는 우리 역사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는 재해석의 대상으로 남을 국보급 아이콘입니다. 그녀는 우리 사회가 건강함을 잃을수록 우리가 나아갈 바를 가리키는 '오래된 미래'로서 작동할 것입니다. 그녀의 아우라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느끼는가 하는 것은 우리 삶의 조건, 특히 문제적 조건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우리의 문제적 조건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녀는 재주 많은 기생 정도에서 당대를 준열히 꾸짖는 저항적 지성까지 다양한 전형으로 유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를 해석하는 폭과 높낮이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 자체를 문제적 인간이 아닌 것으로 망가뜨리는 데까지 나갈 수 없음은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입니다. 그녀가 아직도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것은 그녀의 바로 그 문제성 때문이기 때문이지요. 

그녀가 살았던  당시 조선은 건국 세력이 그 기득권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결과들이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종-인종-명종 삼대에 이르는 시기는 수구(守舊)의 절정이 정치경제적 모순을 극대화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임꺽정의 난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미구에 임진왜란의 대파국이 밀어닥칩니다. 

황진이의 스승 서경덕이 1546년까지 살았는데 임꺽정은 1561년에 죽임을 당했고 임진왜란은 1592년 일어났으니  시대의 어두움은 그야말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질주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 때 망국의 수도였던 송도에서 기생 노릇이나(!) 하던 한 여성 황진이.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일 무엇 하나  없어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스승인 서경덕보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소설 속 허태휘)보다, 주리파 거두 퇴계 이황(1501-1570)보다  그녀가 훨씬 더 문제적입니다.

그녀의 삶은 내리 누르는 발을 치받고, 옭죄는 손을 비틀어 물리치고, 막아서는 벽을 뚫고 가로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저항적 소통, 그 도저한 자유혼. 버림 받은 존재로서 버린 자들을 마주하고 품고 넘어서는 옹골찬  결기. 다만 문화적 담론에 가두기에는 그녀가 너무 큽니다. 그녀는 매우 정치경제학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황진이는 계속해서 우리 역사와 더불어 성장해 가야합니다. 

이런 점에서 김탁환의 해석은 성큼 한 걸음 내디딘 것으로 평가해 마땅합니다. 이른바 '서경덕 에콜'의 대모 지성으로 자리 매긴  것. 이는 물론 역사적 근거를 힘써 추적한 결과일 테지요. 제 느낌엔 아직도 '만주 벌판' 너른 땅이 더 남아 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도 거보임에 틀림 없습니다. 

바리데기와 황진이를 연결하는 여성사상 지평 열기에 힘을 쏟고 있는 저로서는  <나, 황진이> 문장 하나하나를 탱탱하게 만질 수 있어 좋습니다. 시와 산문의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 문장은 마치 제가 웅얼거려만 놓고 못챙긴 말을 반듯하게 재현한 듯 소름이 돋습니다. 소설임에도 때때로 신영복 선생의 글과 '돌림'인 느낌도 납니다. 천천히 천천히 읽으니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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