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하라! - 사람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감정은 뇌에 따라 움직인다 세로토닌하라!
이시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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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인 이시형 선생은 탁월한 정신과전문의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power celebrity로서 익히 알려진 분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사회적 성취가 결합하여 빚어낸 여유와 자신감을 듬뿍 담은 책이군요. 전반적인 내용이 무엇일 것이라 이미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읽지 않으려 했는데 저 자신이 세로토닌이 부족한 경향성을 지닌 사람이라 아무래도 한 번 들여다봐야겠다 싶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목차를 쭉 훑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휘릭 스쳐갑니다. 첫째, 흠, 과연 이시형이군! 둘째, 어? 일본 냄새? 앞의 것은 사족을 붙일 까닭이 없으니 넘어가고. 일본 냄새에 관해 말씀드리지요. 일본 에도(江戶) 시대 사무라이적 화의(和醫)로 요시마스토도(吉益東洞)가 있습니다. 그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을 canonical text로 하는 음양오행론적 주류의학을 거부하고 <상한론(傷寒論)>이란 다른 전승의 text에 터 잡아 독자적인 의학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의학의 핵심은 이른바 "만병일독설(萬病一毒說)"입니다. 즉 모든 병은 하나의 독에서 비롯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생각은 분명히 사무라이적 세계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병의 성격이 그러하다면 치료의 성격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약징(藥徵)>이란 저서에서 모든 약에는 한 가지의 주치(主治)가 있음을 천명해 놓았지요. 그의 이런 사고는 병의 증거와 거기에 맞는 처방은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의학사상으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최근 우리나라 한의학계를 요시마스토도(吉益東洞) 열풍이 휩쓸고 있습니다. 그의 의학으로 무장한 학회가 전 한의사의 1/5 이상을 거느린 공룡이 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주류한의학의 설명 방식이 은유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단도직입으로 딱 잘라 설명하는 요시마스토도(吉益東洞)류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사회적 트렌드와 맞물려 있는 현상일 것입니다. 뭐에는 뭐가 좋다, 하면 온 국민이 일제히 그리로 쏠리는 일상적이고 통속적인 치우침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초일극집중구조'로 나아가고 있으니  한의학계 또한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만병일독설(萬病一毒說)의 관점을 연장하여 행복 문제를 거론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복일( )설"이 의당 나올 테지요. 바로 그 ( )에 세로토닌을 집어넣으면 어렵지 않게 "세로토닌하라!" 는 강령과 함께 powerful한 사유/실천 체계가 나올 것입니다. 마치 요시마스토도(吉益東洞)의 그림자 밑에 공룡학회가 탄생했듯 세로토닌 깃발을 높이 든 일본인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이 책이 나온 게 아닐까, 추측했던 바, 아니나 다를까, 저자 서문에 아리타란 일본인이 중요하게 언급되었고 맨 뒤에 그가 쓴 추천사가 있더군요. 그러나 이건 여전히 추측입니다. 얼마나 크게, 그리고 한 방향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2. 이 책의 내용이 형성된 구체적인 곡절과 과정은 일단 덮어두고 "세로토닌하라!"는 강령을 펼쳐낸 책의 내용 자체를 검토해 보기로 하지요. 두 가지 화두를 설정하겠습니다. 하나는 이 책은 무엇을 목표로 삼았을까? 다른 하나는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과연 "세로토닌하라!"는 무엇일까? 

<세로토닌하라!>는 의학적 견지에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려는 목표를 지닌 책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내용이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 지향은 자기계발  또는 성공입니다. 이른바 시크릿류의 담론에 뇌과학을 접목시킨 것이지요. 저자의 활동영역과 사회적 위상을 생각하면 이 책이 치유를 위한 것이라 하든 자기계발을 위한 것이라 하든 별 차이 없어 보입니다. 그게 자연스러울 만큼 저자의 사유와 삶이 광폭이거든요. 그러나 사실은 바로 이런 자연스러움을 잘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연스러움이 어떤 진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학적 작업은 그 사람의 인간적 완성을 향한 도정에 참여하는 활동이고 자기계발을 이끄는 공학적 작업은 그 사람의 사회적 성공을 부추기는 전략을 제공하는 활동입니다. 인간적 완성과 사회적 성공은 다른 문제입니다. 물론 이 둘을 일치시키거나 균형을 이룬 사람도 있지만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인간적 완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사회적 성공에만 골몰하지요. 현대사회는 특히 이런 경향성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오직 '대박나는' 삶을 사기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들로 세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권력을 움켜쥔 자들은 다양한 상품을 준비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미 '대박난' 사람들로 하여금 사후논리를 통해 '대박나는' 삶을 꿈꾸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게 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게 시크릿류의  자기계발서 내지 성공지침서. 간절하게 원하면 다 된다, 아, 이 얼마나 달콤하고 황홀한 환상입니까. 결코 죽을 때까지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이지요.  

이런 책들이 서점가를 휩쓸고 또 휩쓰는데 어째서 세상은 이리도 살기가 힘들까요. 이런 책들에 감동 받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데 어째서 우리나라는 OECD국가 가운데 자살율이 가장 높을까요. 그 의문에 정직하게 대답해야 할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도리어 이런 상황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음모적 프로젝트에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 그리고 뇌과학자, 심지어 종교 지도자까지 합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포식자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오늘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환상을 팔고 있습니다. 

3. 그러면 어째서 이런 전략이 먹히는 걸까요? 서두에 스치듯 말씀드린 바, '초일극집중구조'의 위력이지요. 사회적 상징 조작으로 '영웅'이 탄생하면 세상은 온통 그의 판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끝내 '영웅'이 되지 못하는 대다수는 끊임없이 다른 '영웅'을 찾아 헤맵니다. 영원회귀!  

이런 순환의 한 고리에 오늘 우리의 화두인 세로토닌이 놓여 있습니다. 왜 하필 세로토닌일까요? 아마도 이 문제의식은 저자 자신에게도 내부적 고민이라기보다 외부적 임팩트였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만일 저자가 먼저 세로토닌을 깊이 들여다보았다면, 나아가 뇌과학적 진실을 좀 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았다면, 유독 세로토닌 하나를 보편적 당위 표제어로 삼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근거에서입니다. 

저자의 말과는 달리 사람의 마음을 연출해내는  뇌내 물질에는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물론 이 세 물질, 중요하지요. 그러나 이들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만큼 중요한 물질로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과 아세틸콜린(Ach)이 있습니다. 저자가 왜 이 두 물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세로토닌과 대척점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는 구조에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세로토닌형 인간의 8가지 특징 부분을 보면 오히려 GABA 형 인간의 특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베풀어 행복하다." 이 부분. GABA는 정서의 안정을 연출하는 물질로서 따스하고 품 넓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형을 빚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Ach형 인간의 특징으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뇌형이다." 이 부분. Ach은 창조성을 연출하는 물질로서 전형적인 우뇌형 인간을 빚어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대목에 이르면 세로토닌형 인간의 8가지 특징 또한 세로토닌을 깊고 넓게 들여다보며 발견해냈다기보다 이미 이상적인 인간형을 전제하고 그 모든 특징을 세로토닌에 환원시켰다는 혐의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잠재능력 200% 올려주는 전두엽 만들기 10계명도 세로토닌과 직접 연결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는 이야깁니다. 세로토닌은 전천후의 능력을 지닌 이른바 전능물질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로토닌하라!"는 명백한 환원주의입니다. '영웅' 만들기입니다. 마치 TV에서 인기 배우 데려다 토크쇼 하는 걸 보면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노래도 잘하고 봉사도 열심이고 심지어, 인격도 고매하다고 과대 포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4. 세로토닌. 그렇습니다. 중요하지요. 특히 스트레스 덩어리인 채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스트레스 물질을 제어해주는 세로토닌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강조점을 넘어 세로토닌 하나를 내세워 보편적 당위 표제어로 삼는 것은 전략의 차원에서는 용인할 수 있으나 진실의 차원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맨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세로토닌이 부족한 것으로 진단 결과가 나온 사람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닙니다. 거기까지입니다.  

5. 사족-이 책을 읽는 동안 세로토닌은 외부에서 식품물이나 약으로 공급해줄 수 없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 십상이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세로토닌은 물론 그 전구물질인 트립토판을 듬뿍 함유한 식품도 많고 한약재, 탕약처방도 많습니다. 심지어 세로토닌 수용체와 신경계 자체를 조절하는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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