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의 함정 - 인간에 관한 가장 위험한 착각에 대하여
알바 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갤리온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1. 현대 학문의 거대한 흐름에서 뇌과학을 제외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계의 큰 스승인 달라이 라마가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한 축이라는 사실은 뇌과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말해줍니다. 뇌과학 연구 덕분에 많은 사실들이  새로이 밝혀지고 있으며 관련 학문으로 영향이 파급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 관련 연구들을 접하다 보면 뇌의 위치가 마치 빅뱅 이론의 폭발점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인간 생명과 인간의 삶 전체가 뇌에서 터져 나온 작은 우주처럼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이는 아마도 연구 주체 대부분인  서양인들이 지닌 주객 이원론과 기독교 무의식이라는 토양에서 비롯하였을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인간의 정신을 뇌과학에 기대어 연구할 때 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그리고 뇌에 집중해서 정신을 말하는 동안 다른 요소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오직 뇌만을 정신의 좌소, 나아가  창조자로 여겼다고 몰아붙일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뇌과학은 몸의 다른 부분에 대해 배타적 지위를 뇌에 부여한 게 사실입니다.  정신을 뇌가 빚은, 적어도 뇌에서 빚어진 무엇(being)으로 인식한 것도 사실입니다. 서양인, 특히 지식인 특유의 홀로주체적 사유법, 명사적 어법에 갇힌 탓입니다. 알바 노에는 바로 이 부분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2. 정신(마음)은 뇌의 산물(being)이 아니고 뇌를 포함한 몸 전체와 환경이 주고받는 상호작용(doing)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상호주체적 이고 동사적인 사유법에 터잡고 있지요. 더 나아가 마지막에 담담히, 그러나 단호하게 마무리 하듯 "우리는 세계 속에 있으며 세계의 일부이다. 우리는 집에, 정겨운 우리 집에 있다."고 함으로써 장(field) 사유에 깃듭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우리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것입니다. 알바 노에가 매우 논쟁적인 자세로 대립각을 세우고 각종 증거와 반론, 그리고 절묘한 비유로 주류 지식판을 뒤흔들지만 읽는 내내 제 마음은 고요했습니다.  이따금 마치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상대방에게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하는 듯한 인상마저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서양인 동료들을 향한 그의 정념적, 정치적 글쓰기에 공감했기 때문에 정성껏 읽었습니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촌철살인의 묘사, 은유가 저자의 비범함을 한껏 드러내주는 한편 독자의 읽는 묘미를 더해주기도 합니다. 특히 에필로그 첫머리에 나오는 "우리는 경계가 유동적이고 성분이 변화하는 여러 패턴의 능동적 맞물림이다."라는 표현, 가히 전권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절창(!)입니다. 아, 맞물림! 이거, 원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번역된 우리말로서도 기막힌 표현 아닌가요....... 

어린아이들은 세계와의 연속성 속에서 사고한다, 정신은 오솔길 내기이다, 주지주의는 인간을 삶에 대한 초보자로 만든다, 생명은 의식의 하한선이다, 보면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보인다, 노련한 선수는 뇌가 할 일을 과제가 대신한다, 그것은 접근의 문제다, 현실이 우리를 정박시킨다, 태초에 상황이 있었다.......기억나는 것만 대충 헤아렸는데, 청량한 소다수 맛이 나는 문장들입니다. 

3. 그리고 무엇보다, 맨 마지막, 주석 달기의 신선함! 13,800원이 제공하는 즐거움 치고는 실로 짜릿합니다. (그야말로) 사족: 더러 번역의 문제가 있긴 하되 옥의 티로 넘길 수 있으나, 역자 후기에서 번역자가 저자의 정념과 정치의식을 "눈 뜨기의 크고 작음' 수준으로 격하(?)시킨 부분은 동의할 수 없군요.  왜냐하면 이 것은 근본적인 세계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정(精) 일독을 삼가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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