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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 시대의 지식생산과 문화정치 - 예술-학문-사회의 수평적 통섭을 위하여 ㅣ 문화과학 이론신서 55
심광현 지음 / 문화과학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1. 쉽지 않은 책입니다. 각기 쓴 논문/에세이 형식의 글을 묶어놓았기 때문에 유연한 흐름을 타고 읽음으로써 난해함을 상보하는 이익이 차단되는가 하면 일반인을 독자로 상정하지않았기 때문인지 거침없이 나타나는(!) 개념과 내용의 불친절함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 맥락을 잃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넘어가면서 읽다 보면 거듭 나타나는 저자의 사상과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들어오므로 마다마디 어려운 부분들을 미련없이 제끼고 나아갈 배짱(!)이 생깁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책이지 싶습니다.
2. 나카자와 신이치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드렸듯 제 학문 간, 사상 간 가로지르기는 이미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전개되는 쌍방향적 사유, 은유적 소통과 그 너머의 역설적 화해, 그로 말미암은 수평적 통섭(通攝)은 바야흐로 인류의 존망과 연결되는 critical 한 화두입니다.
이는 단순히 학문이나 기술의 문제를 넘어 문화정치적 권력과 자본의 거대 시스템적 행태의 문제이기 때문에 향유하면 더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차원에서 다룰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개인과 사회, 사회와 자연 사이의 인간, 문명과 생태계, 유비쿼터스적 전천후 행복과 완벽 독재의 딜레마.......이 모순을 꿰둟고 흐르는 문제적, 그리고 해결적 상상력의 한 복판에 예술을 터 잡게 하는 안목의 적확함에 공감, 동의하면서 결단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물론 독자의 다양한 사회적 위치와 관심사가 각기 다른 반응 스펙트럼을 낳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의 사유 역사가 오늘 여기서 우리에게 제압적 서구문명의 형식논리, 단치(單値)논리를 극복하고 모순을 끌어 안아 전체를 사고하는 (은유, 나아가) 역설의 논리, 다치(多値)논리 시대를 열도록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요구에 부응하여 각자 자신의 처지에 맞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유로우면서도 든든한 연대를 이루어 참으로 사람의 얼굴을 한 위대한 통섭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3. 책의 내용 가운데 한의사로서 제가 눈여겨 본 대목은 기(氣), 천지인(天地人), 주역의 음양상보, 한의학의 흑상(black box) 시스템론 등으로 동서 사상의 통섭을 이야기한 부분입니다. 물론 아직은 선언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이런 과정에서 한의학은 분명하고도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참여할 주체임에 틀림없습니다. 한의학을 어떤 이들은 사이비 의학이라 매도하지만 동아시아 고등 문명을 수천 년 동안 지탱해 온 보건의료 체계임을 인정하는 한 함부로 폄훼할 수 없는 아우라가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한의학은 기술과학과 인문과학이 융합되어 있는 사유체계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유를 꿰뚫는 쌍방향 흐름, 역동적 맞물기가 가히 예술적 차원까지 획득함으로써 이 책이 지향하는 바와 명실상부하게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하여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대로 된 한의사라면 한약과 침으로 병 고치는 기술자를 넘어서 시대의 요구를 담은 고민에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90년대부터 20년 가까이 우수한 인재들이 한의학 주체로 흘러들면서 기본적 인적 토양은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들이 어떻게 문제 의식과 실천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한의학도 자신들은 물론 사회 전체가 이 문제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관심사, 전공, 지적 수준과 무관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이웃의 통(通) 일독(一讀)을 삼가 권하면서.......